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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엘시드와 스페인 국토회복운동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6.10.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에니메이션 엘시드를 보고, 엘시드라는 인물과 관련된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에 대해서 알아봄.
국토회복운동의 전개과정과 의의 등을 담았음.

목차

1. 엘시드 - 실존인물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2. 국토회복 운동(Recomquista)의 과정
①국토회복운동 개요
②국토회복운동의 전개 과정
㉠제1기(771~1031)
㉡제2기(1031~1212)
㉢제3기(1212∼1492)
3.국토회복운동의 의의

본문내용

1. 엘시드 - 실존인물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엘시드라고 알려진 유명한 기사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는 11세기 중엽에 Burgos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이었으나 역사상에 나타난 것과 전설상에 나타난, 두 가지의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는 잔인하고 인색했으며 관용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엘 시드는 전설상에서 스페인 민족의 모든 이상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모든 귀족 가문의 청년들처럼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궁정 관습들을 배웠다. 아주 젊었을 때부터 산쵸 2세의 왕궁에서 살았다. 산쵸 2세는 그를 보호하고 도와주었으며, 심지어는 그의 무술 사범까지도 택해 주었다. 그는 왕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다녔고, 대단한 용기를 가진 군인으로 두드려져 보였다. 그가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스티야와 아라곤과의 전쟁을 통해서였다.

아버지가 유산을 남겨준 동생들을 제거한 산쵸 2세는 암살당하여 죽었다. 그래서 그의 동생 알폰소 6세가 카스타야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카스티야의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2명의 용감한 기사들은 산쵸 2세의 암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맹세를 왕에게 시키기 위해서 엘시드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선출했다. 왕은 자신을 모욕한 엘시드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고, 어느 시기가 되자 그를 Castilla 왕국에서 추방했다. 엘시드는 그의 두 딸과 그의 아내를 두고 떠나야만 했고, 그들은 곧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엘시드는 그의 왕에게 적대시하는 대신에 모로 족이나 다른 기독교국의 왕들에게 자신의 무예 실력을 제공하기로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부하를 데리고 지칠 줄 모르게 싸웠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항상 승리감에 도취되어 나갔다. 그 당시 그의 군사력은 어마어마하게 켜졌다. 그의 삶에 대한 여러 일화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모로 족들로부터 발렌시아 도시를 탈취한 것이다. 9달간의 포위 끝에 승리하여 들어갔고, 독자적인 소군주가 되었다. 이 정복이 오직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자신의 왕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은 Castilla의 왕 알폰소 6세의 주권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발렌시아를 방어하며 보냈고, 그 곳에서 1099년에 죽었다.

참고 자료

안영옥 ‘스페인 문화의 이해’. 남경태‘종횡무진 서양사’. 파스칼 백과사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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