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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대해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0.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서론
문자도 기록도 없었던 아득한 옛날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려 했고, 그것을 남기고자 했다. 때론 목소리로 때론 몸짓과 동작으로 조금 더 후엔 그림으로,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석판, 짐승의 뼈, 나무의 잎, 나무껍질, 철, 도자기, 천, 파피루스, 점토판, 양피지 등 기록을 남기고 전달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은 이와 같이 다양한 기록 재료들을 사용하게 했지만, 그 모두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이란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류의 문명발달과 문화형성은 대개 인간행위의 세가지 발전단계인 말하기, 그리기, 그리고 쓰기를 거쳐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쓰기를 통하여 후대 자손들에게 기록들을 보여줄 수 있었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연락책으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 에서는 종이의 종류와 그 쓰임새 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본론

1.종이의 역사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종이`라는 말은 저피에 그 근원이 있는 듯하다. 즉 종이의 `지(紙)`는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 `저(楮)`에서 `지`로 음이 전환된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한글의 `종이` 역시 닥나무의 저(楮)에서 `저이`로 변한 것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중국의 한지나 일본의 화지와는 달리 주로 저(楮:닥나무)를 사용하여, 저(楮)는 종이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종이의 출현 시기에 관해서는 다소의 다른 의견이 있으나 현대에 이르는 제지법은 기원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 발명하였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지만, 근래에 채륜의 한지 이전의 종이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어 채륜은 제지법의 발명자라기보다는 완성자 또는 개량자로 보는 설이 나오고 있다. 동방의 제지문명은 동서로 양분되어 전파되었다. 고구려의 고선지 장군에 의해 서쪽으로 전래된 제지법은 실크로드를 따라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 전래되어 서기 1200년경을 전후하여 제지공장이 생겼다.

목차

-서론
-본론
1.종이의 역사
1-2.한국종이의 변천사
1-3 문헌에 보이는 우리 종이의 이름
1-3-1 종이의 옛 이름

본문내용

1-2.한국종이의 변천사
-삼국시대
105년 중국 후한시대 채륜에 의해 개량된 종이생산 기술은 이후, 한반도에도 전해졌으며 비슷한 시기 한반도에서도 종이와 비슷하게 쓰였던 재료가 발견되었다는 얘기가 전하는 것을 보아, 아마도 한반도에서도 채륜에 의한 개량시기에 앞서 종이가 쓰였으리라 추측된다.
이처럼 우수한 기술을 지닌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에 들어와 보다 발전된 국가형태로 동아시아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에 의해 일본에 종이 생산기술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을 보아, 외국에까지 전해주었을 만큼 보다 발전된 종이 생산기술을 가졌으리라 본다.
-통일신라시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용지는 서기751년 이전의 닥종이임이 고증되어 있으며 지질과 인쇄술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우리 종이의 발전기였다. 1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확대된 불경 조판사업으로 종이생산기술은 크게 발달하였으며, 국가에서도 이들 종이생산기술자들을 지장(紙匠)이라는 명칭을 주었고, 이들을 모아 집단으로 구성케하여 이들의 기술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 종이생산기술은 중요한 국가 수공업의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다. 1415년에 이르러 최초로 국가운영의 종이생산시설인 조지소를 설치하였고, 이러한 기틀 위에서 중앙과 각 지방의 종이생산기술자들은 수많은 노력과 경험을 통해 다양하면서도 우수한 종류의 종이를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인접한 중국과 일본의 종이생산 재료 및 기술을 들여와 우리역사 속에 축적된 기술과 외래 기술을 바탕으로 더 한층 높은 우리만의 종이생산기술로 발전시켜 우리 종이의 우수함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3 문헌에 보이는 우리 종이의 이름
문헌에는 종이의 이름이 많이 전한다. 가장 구체적이면서 자세히 나열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誌)」‘전라도 구공조(榘貢條)’로 고려지, 부본단자지(副本單子紙), 갑의지, 은지(銀紙), 세화지, 화약지(火藥紙), 유둔지 외에도 9종이 더 나온다. 같은 책 ‘전라도 궁권조(宮眷條)’에는 앞에서 말한 종이 외에도 주봉지(主峰紙), 서계지(書契紙), 축문지(祝文紙), 표지, 도련지(搗鍊紙), 중폭지(中幅紙), 상표지(商表紙), 안지(眼紙), 백주(白奏紙), 장지(壯紙), 상주지(常奏紙)가 생산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그 무렵 종이 종류가 얼마나 많았고 다양하게 쓰여졌던가를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대전회통(大典會通)』, 「한양가」, 『임원시육지(林園十六紙)』, 『용재총화(慵齋䕺話)』,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사 발간한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종이의 종류가 100여가지가 넘는다 한다, 또 각 지방마다 각기 다른 종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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