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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사 답사보고서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10.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흥법사를 답사한 후에 작성한 답사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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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高麗史) 경자(更子) 23년 (940)』

二十三年 春三月 改州府郡 懸號
이십삼년 춘삼월 개주부군 현호

秋七月 王師 忠湛死 樹塔于
추칠월 왕사 충담사 수탑우

原州 靈鳳山 興法寺 親製碑文
원주 영봉산 흥법사 친제비문

☞봄 3월에 주, 부, 군, 현의 명칭들을 개정하였다.
가을 7월에 왕사 충담이 죽었다.
그를 위하여 원주 영봉산 흥법사에 탑을 세우고 왕이 친히 비문을 지었다.

=================================《北譯 高麗史》 第一冊============
1962年 11月30日 고전연구실 편찬
신서원편집부 편집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 45호
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2리

흥법사를 향한 발걸음...
5월 11일. 강렬한 햇빛이 비친 오전, 흥법사 답사를 위해 우린 모였다. 낯선 곳을 가는 것이었기에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을 갖고 57번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1시간 남짓 버스에 몸을 실을 우리는 아무런 말없이 목적지를 향했다. 도착한 후 우리를 맞이한 것은 넓은 들판뿐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한 도착지점을 몰랐던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언덕을 지나 따가운 햇볕으로 지칠 때 쯤 고개를 살며시 든 우리의 시야 앞에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우뚝 솟은 탑이 보였다. 삼층석탑을 발견한 기쁨에 단숨에 달려간 우리는 허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흥법사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 단 두 개 뿐. 절터만 남은 곳에 남은 유물이 몇 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광경을 본 우리는 빈약함과 초라함밖에 느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답사를 결심하고 온 곳이라 남은 유물이라도 최선을 다해 관찰해야 했기에 허탈한 마음을 추스리고 우린 문화재 앞으로 다가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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