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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면극의 역사와 특성 (탈춤과 함께)

저작시기 2006.09 |등록일 2006.10.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 가면극에 대한 기원부터 현재까지 역사에 대해 설명
한국 가면극에 대한 자세한 특성을 설명

참고자료로 탈춤에 필요한 도구와 탈춤과 가면극의 관계에 대한 설

목차

1.가면극의 역사

2.가면극의 연극적 특성
1) 상연시기와 시간
2) 탈판
3) 대사, 노래
4) 연희내용
5) 연희자

3. 가면극의 사회적 특성

(참고 자료)
1. 탈춤
2. 탈춤의 도구
3. 탈춤의 춤사위
4. 연극의 일환으로 가면극에서 탈춤의 역할

본문내용

가면극이란 연기자의 일부 또는 전원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연출하는 극을 말한다.

1. 한국 가면극의 역사적 과정


문헌상으로 뚜렷이 나타나는 한국 가면극의 기원은 신라 때가 된다. 통일신라시대 말엽의 대학자 최치원이 지은 한시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수록되었는데, 이 중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狻猊)’는 가면을 사용한 놀음이다. 이 가운데 《대면》 1수를 옮겨 보면 “황금탈 쓴 그 사람(方相氏, 黃金四目을 가리키는 듯하다)이, 구슬채찍 휘두르며 귀신 부리네, 빠른 걸음 조용한 모습으로 운치 있게 춤추니, 마치 태평성세에 붉은 봉황새의 춤 같구나”라 하여 가면무(假面舞)를 간결하면서도 극명하게 묘사하였다. 이는 한국 가면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되는 셈이다. 그 밖에도 신라 때에는 ‘검무(劍舞)’와 ‘처용무(處容舞)’ 등이 있으며, 이 2가지 연희(演戱)에서도 가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몇몇 고문헌에 나와 있다.

‘동경잡기(東京雜記)’,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신라의 황창랑이 어린 몸으로 검무를 추다가 백제의 왕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이를 슬피 여긴 신라인들이 그 모습을 가면으로 만들고 검무로 연출하여 그의 공을 기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처용무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권2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조에 그 설화가 나타나는데, 신라 헌강왕 때 춤이 지어져서 처용가면과 더불어 연례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에서 귀신을 쫓는 의식인 구나의예 쓰이던 것으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이 춤을 추는 격식이 기록되었다.

고구려의 가면극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안악(安岳)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코가 유달리 크고 높은 무용수가 그려 있어 이것이 가면을 착용한 무용도(舞踊圖)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백제의 가면극에 대해서는 ‘니혼쇼키[日本書紀]’에 612년 백제의 미마지가 중국 남조의 오나라에서 기악을 배워 일본에 전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것이 가면 무언극으로 7~8세기 무렵의 기악가면(伎樂假面)이 200여 개나 일본에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한국 연극사 이두현
네이버 백과사전 가면극, 탈춤
http://blog.naver.com/weedsong/100014334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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