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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자유부인`을 보고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6.10.26 파일확장자훈민정음 (gul) | 3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영화감상문이면서 시대적 복식과 더불어 영화에서의 복식을
자세히 분석해 놓았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서울신문 지상에 8개월 간 연재되어 독자의 인기를 가장 많이 누렸던 정비석 원작의 <자유부인>은 김성민 각색으로 삼성 영화사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한형모 프러덕션이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그 당시 사회의 도덕적인 문제성을 놓고 작가 정비석과 서울대 교수 황산덕과의 논쟁이 치열하였다고한다. 문제의 쟁점은 도덕적으로 혼란한 전후 사회 속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교수 부인이 춤바람으로 가정을 파탄시켜 사회적인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몰지각한 인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과 교수 부인도 사람인 데 세상이 변한 마당에 비근대적인 사고는 탈피해
야 한다는 논쟁으로 관객의 생각까지도 두 갈래로 파벌을 만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 작품이 영화화되었을 때에는 원작에서 묘사할 수 없었던 장면이나 표현 들을 추가로 첨가하여 더욱 화젯거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교수 부인으로 등장한 김정림은 실제로 다방의 마담이기도 해서 더욱 떠들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자유부인" 화제의 여파를 몰아 반도영화사는 1957년 유호 각본, 김화랑 연출로 "속자유부인"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걸쳐 한국영화의 70%이상이 멜로드라마가 제작되는 멜로물의 전성기를 이루는데 한형모의 "자유부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영화였다.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이 땅에는 서구의 물자와 사상이 물밀듯이 몰려들어왔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신생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지표이기도 하였다. 동란으로 잠시 억제되었던 새로운 시대풍조는 다시금 왈칵 쏟아져 걷잡을 수 없이 이 시대의 사회상, 가정적 윤리와 세대간의 갈등을 비롯한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러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자유부
인"이 등장은 그 시대 관객들의 공감대에 잘 부합된 영화로 이후 한국의 멜로드라마 영화의 붐을 이루는 원천이 되었다. 한형모 감독은 만주에서 미술학교를 나와 일본예술대에서 미술공부를 하다가 중단하고 일본 동보영화사에서 촬영을 수업한 정통영화인이다. 1944년 최인규의
"태양의 아이들"에서 촬영으로 데뷔하여 "자유만세" 등을 촬영했다. 그는 외래문화 풍속도의 대표적인 상황연출로 댄스파티와 키스신을 각별히 신경을 써 연출 하였다. 춤추는 댄스파티의 키스 장면을 500자의 노 컷으로 촬영을 시도함으로써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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