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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로마의 천적 한니발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10.21 워드파일MS 워드 (doc) | 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카르타고의 맹장인 한니발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당시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립관계, 그리고 1,2차 포에니전쟁의 전개, 카르타고의 멸망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복의 역사를 가진 로마는 그들에게 대항했던 모든 적들을 철저히 파멸시켜 역사에서 지워버리거나 그 문명과 역사를 미개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로마에게 최후까지 대항하고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맹과 업적이 한치의 빛도 바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진 사람이 있다. 바로 로마의 천적이자 로마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한니발이다. 한니발은 로마를 멸망에 이를 정도까지 괴롭혔으면서도, 로마가 세계 최고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다.

한니발은 BC 247년 카르타고의 귀족인 하밀카르 바르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니발이 태어났을 당시 카르타고는 로마와 1차 포에니 전쟁 중이었다.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의 도시국가인 메사나와 시라쿠사 간의 갈등이 발단이 되어 각각의 동맹으로 로마와 카르타고가 출전하게 되면서 발발하게 된다. 개전 후 카르타고는 시라쿠사를 점령한 로마군과의 첫 접전에서 패배하게 되고 뒤이은 시칠리아섬 북쪽에서 벌어진 해전에서도 맹위를 떨치던 카르타고의 함대들이 로마에게 참패하게 되면서 전세는 로마로 기울게 된다. 당시 해상강대국이었던 카르타고가 해전에서 패한 것은 아군의 기상이 크게 위축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로마는 이 기세로 카르타고 본국까지 침공하지만 그리스 출신의 명장 크산티포스에게 패하여 BC 241년에 카르타고와 평화협약을 맺으며 종전을 맞이한다. 이 전쟁에서 끝까지 로마에게 대항하며 용맹을 떨친 장수가 바로 사막의 사자라는 칭호를 가진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였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게 패한 카르타고는 해상 무역의 거점인 시칠리아 섬과 식민지들을 잃게 되어 실질적으로 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하밀카르는 아들 한니발을 데리고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에스파냐 원정을 나서게 된다. 본래 상업에 기반을 둔 귀족이었던 하밀카르였기에 에스파냐 지방을 성공적으로 개척할 수 있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왕성한 정복활동으로 영토를 확장해가며 원주민을 융화시겼고 은광을 개발하였다. 이런 하밀카르의 에스파냐 개척으로 인해 카르타고 본국은 포에니 전쟁 이전보다 더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하밀카르의 일족 역시 엄청난 사유재산을 비축하고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최고의 기병인 누미디아인들을 용병으로 기용해 거대한 사병을 조직한다. 당시 하밀카르의 일족은 그들 사유재산과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밀카르는 에스파냐 남동부에 이후 한니발의 정치적 군사적 거점이 되는 카르타헤나라고 명명된 신도시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참고 자료

1.명장 한니발 이야기 1,2,3 (파트리크 지라르 / 2001.7.30 / 한길사) 중 2권
2.이야기 세계사 1 (김경묵, 우종익 / 2002.12.20 / 청아출판사)
3.영웅격정사 (한정주 / 2005.11.1 /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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