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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광개토대왕 비문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6.10.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광개토대왕 비문에 관한 논문입니다

목차

1. 序論

2. 廣開土大王의 정복활동

3. 『비문』의 발견과 왜곡

4. 신묘년조에 대하여

5. 『비문』의 구성과 내용

6. 結論

본문내용

1. 序論
廣開土大王은 고국양왕의 아들로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태자시절의 이름은 談德이었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남자답고 위엄이 있었으며, 뜻이 높았다고 한다. 우리가 부르는 廣開土王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諡號이다. 그러나 廣開土王의 정식 시호는, 고구려의 신라 지배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인 경주시 로서동 호우총에서 출토된 壺扜의 바닥에 쓰여진 명문에 의하면 그가 죽은 후 고구려에서 불려진 이름은 國剛上廣開土地好太王이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는 國剛上廣開土境好太王과 함께 국강상광개토지평안호태왕이란 이름도 나온다. 『모두루묘지명』에는 國剛上廣開土地好太聖王이라고도 했다.
諡號는 생존시 업적을 기리어 붙이는 이름이다. 여기서 國剛上은 왕의 무덤의 위치를 뜻하는 말로 이해되며, 廣開土境 은 왕의 살아 생전의 업적을, 平安은 치세의 표현을, 好太王은 왕을 아름답게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諡號의 의미대로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크게 넓힌 임금이며, 나라를 평안하게 했으며, 또한 백성들이 좋아했던 호태왕 즉 왕 중의 왕이었다. 그의 긴 諡號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광개토대왕과 『비문』에 등장하는 太王이란 약칭을 그를 지칭하는 칭호로 사용하고자 한다.
또 『비문』에는 年號을 永樂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永樂 5년은 廣開土大王이 즉위한 지 5년이 되는 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廣開土大王의 연대는 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하고자 한다.
廣開土大王에 대해서는 『三國史記』를 비롯한 역사서에 기록된 것과 『비문』의 기록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비문』에 나온 연대와 『三國史記』 연대가 1년이 틀린다. 하지만 『비문』의 연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옳기 때문에 『비문』에 기준을 두고자 한다.
太王은 廣開土, 즉 땅을 크게 넓힌 왕이다. 太王의 시대를 알기 위해서 먼저 太王의 정복활동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태왕의 정복활동은 백제와 왜, 가야를 정벌하는 남방정벌과 후연과 거란을 정벌하는 서방정벌, 그리고 숙신과 동부여의 복속됨을 재확인하는 동북방 정벌 등 사방으로 크게 펼쳐져 있다.

참고 자료

이형구, 박노희 【광개토대왕릉비신연구】 동화출판사, 1986
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바다출판사,
이인철 【고구려의 대외정복 연구】 백산자료원, 2000
강무학 【광개토대왕의 전술】 세진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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