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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조선시대 도성계획과정과 궁궐의 담장정원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10.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도성계획과정에서 한양천도와 한양도성계획의 특징이 있고 궁의 특징 그리고 담장의 특징을 정리해놓았음.

목차

1. 조선시대 도성계획
한양으로의 천도. 한양 도성계획의 특징. 한양도성의 풍수
2. 조선의 궁궐
3. 도성계획이 궁궐정원에 미친 영향

본문내용

1. 조선시대 도성계획
(1) 한양으로의 천도
조선은 태조 1년(1392)부터 순종 4년(1910)까지 27대 518년 동안 지속된 왕조이다. 475년 동안 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을 버리고 새로운 왕조의 수도와 궁궐을 건설한 곳은 한양 곧 조선시대의 한성이자 지금의 서울이다. 이 한양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도읍지였고 삼국의 쟁탈 지였는데 신라 통일 이후에는 수도인 경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는 한양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개성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수도를 보좌하는 곳으로서 특별히 남경으로 승격되었다. 더구나 지리도참설의 영향 때문에 숙종(1095~ 1105년) 때에는 남경에 도성과 궁궐을 지었으며 뒤이어 공민왕(1351~1374년) 때에도 남경으로 천도할 계획아래 새롭게 궁궐을 짓기도 하였는데 끝내 천도를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조선 태조는 왕위에 즉위하자, 곧 한양으로 천도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은 『도선비기』에 ‘繼王者李而都於漢陽-다음의 왕은 이씨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라는 한양도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국도를 옮겨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하고, 인심을 개혁할 필요와 동조되어 자연스럽게 추진되었다. 여기에 이용된 것이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로, ‘개성의 지기는 이미 쇠하였다. 개성은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이다.’라는 도참설도 한몫하였다.
태조는 음양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이란 임시관청을 설치하여, 권중화, 정도전, 성석린, 남은, 하륜등 여러 신하가 서운관(書雲觀)과 함께 풍수지리서를 섭렵케하고, 새 도읍지를 신중하게 선정하도록 하였다. 처음에 주목한 땅은 하륜의 건의에 따라 무악이 최적의 후보지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하륜 이외의 대신들은 무악의 터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또 천도 자체를 반대하는 공론이 높았다 그러자 태조는 다시 권중화, 정도전, 심덕부 등의 중심들을 한양에 파견하여 궁궐, 종묘, 조시(朝市), 도로의 터를 정하도록 하고, 그들은 결국 고려 숙종 때에 세운 궁궐터에 궁궐(경복궁)의 터를 정하였다. 그리고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태조는 객사를 임시 별궁으로하여 1394년 재위 3년만에 천도하였다.
<한양상세도-조선팔도고금초감도 부분>
<한양도>

참고 자료

한국의 궁궐 - 1991 이강근 대원사
조선의 궁궐 - 1998 신영훈, 김대벽 조선일보사
서울의 궁궐건축 - 2002 김동현 시공사
궁궐, 유교건축 - 2004 이상해 솔
新궁궐기행 - 2004 이덕수 대원사
한국전통조경 - 2005 정재훈 도서출판조경

초기 한양도성계획의 도형적 해석에 관한연구 - 1995 정기호 한국조경학회지
전통 궁궐 담장의 현대적 적용에 관한 연구 - 1999 박혜정 한양대학교
‘조선왕조실록’에 의한 한양의 입지와 도성관리 - 2003 김현욱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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