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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경복궁후기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0.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무료

소개글

이글은 경복궁을 다녀온 후기로서 교수님의 단 2장이라는 말에 일단 만들고 올려보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한창 중간고사의 시험 공부로 미쳐 신경을 쓸 수 없었던 한국문화 사의 과제가 문뜩 떠 올라 나도 모르게 일단 발을 움직여 경복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의 쌀쌀한 기운이 어느세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경복궁 답사하러 온 우리를 조금 더 활기차게 하고 있었다,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사가 위협을 받고있는 시대에 내가 먼저 우리 문화를 알고 내 자식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움직인 이유도 있다.
난 경복궁을 돌아보면서 문득 이런 사건이 떠올랐다.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 말이다. 그 과정에서 장소가 어디인지와 왜서 그시기에 그러한 일이 일어 났는지 추가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이 궁내 에서는 가장 북쪽이며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한 나라의 국모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장소, 그 곳에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삽화로 잘 나타내고 있었고 나의 피는 일본의 적개심으로 왠지 모를 분노가 일고 있었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은 청일전쟁이 끝난후 명성황후가 일본세력을 배척하자 고종 32년(1895) 10월 8일 일본공사 미우라의 사주를 받은 일본인 자객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경복궁 후원 옥호루에서 명성황후와 많은 상궁을 살해하였다. 명성황후라는 시호는 광무원년에 추증되었으며 처음 남청량리에 장사하였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홍릉(경기도 금곡)에 이장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과 관련된 일들을 돌아보고 경회루로 발길을 돌렸다. 한적한 명성황후의 시해 장소와는 달리 많은 외국인들도 보였고 많은 관광객들이 한가로이 유적지를 보며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빼어난 정경은 내가 지금까지 본 유적지나 국립공원에서 제일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좋았다.

참고 자료

한국문화사, 경복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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