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감사운]피카소의 게르니카 감상문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0.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400원

소개글

참고들 하세요~^^

목차

* 시대적 상황 및 작품의 의미
* 선정 이유와 주관적 견해

본문내용

* 시대적 상황 및 작품의 의미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종류는 벽화이며 크기는 349×775cm이다. 제작연도는 1937년이고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가 보유하고 있다.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 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 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겼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937.4.26일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향해 사격 연습하듯 기관총 세례와 폭탄을 퍼 부었고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왼 아니었다. 약 3시간의 폭격으로 1,654명이 죽고 889명이 다쳤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독일군의 폭격에 대한 분노이자 고발이다. 1930면대 유럽은 새로운 전쟁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에서 파시스트가 정권을 잡고 군비 확장에 힘을 쓰면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점점 커 가는 파시스트 세력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대립 상황은 스페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주제 국가였던 스페인이 공화재로 바뀐 것은 1931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주민이 세 명 중 한 명이 문맹이고 토지 소유자의 겨우 2%가 경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가톨릭교회가 넓은 토지를 비롯하여 스페인 국가 재산의 3-1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교회 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자유와 권리를 억압했다. 공화당과 사회당의 연립으로 구성된 공화국 정부는 교회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고 보통선거의 도입, 군대 개혁, 토지 개혁 등을 추진한다. 이에 대해 지주, 자본가, 성직자, 장교 등 전통적인 지배 계층은 위기감을 느꼈으며 그 결과 독일 나치의 영향을 받은 극우 정당인 ‘팔랑게 당이 결성되었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