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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를 통해 본 박제가

저작시기 2005.05 | 등록일 2006.10.0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박제가의 저서 북학의를 통해 박제가를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목차

서론
북학의가 탄생하기까지
북학의 내용탐구
1)내편
2)외편
박제가와 북학의가 남긴것

본문내용

모름지기 한 국가(國家)에 있어서 국가적 혼란이라는 것은 해당국가에게 역사적 선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대로 무너지느냐, 아니면 새로운 살길을 모색하느냐다. 역사속에서는 국가적 혼란을 맞이하여 무너진 나라도 많았고 기존 관념을 뿌리 뽑아 다시 태어난 나라도 많았다. 18세기의 조선(朝鮮)은 이같은 혼란속에 빠져있었고 선택을 요구당했다. 치명적인 두차례 전란을 겪고 수백년간 지도이념으로 군림해온 성리학(性理學)의 한계가 드러났으며 뒤떨어진 물질문화에 대한 반성이 거론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무드는 기존 질서를 타파할 새로운 엘리트들의 출현을 기대했으며 이에 부응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자들이 있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실학자’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실학자들은 관심분야에 따라 몇가지 학파로 분류되었는데 이들중 중상학파(重商學派)는 상공업을 중시하고 물질문명의 발전을 촉구했다. 본문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박제가(朴齊家)는 스승인 박지원(朴趾源)과 함께 중상학파의 중심인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이자 그를 조선이 낳은 위대한 비주류적 천재(天才)중 하나로 여겨지게 한 ‘북학의’와 함께 그의 생각과 일생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북학의가 탄생하기까지
박제가는 1750년 한성에서 우부승지(右副承旨) 박평(朴坪)의 서자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관직인 우부승지는 말단은 아니지만 대단한 직책도 아니었다. 하물며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였기에 어렸을 적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까지 일찍 여의어 그 생활은 궁핍일로로 치달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타입 인물들이 그렇듯이 그는 애기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젖먹던 때부터 글을 알았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한 그의 뒤에는 아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이씨(李氏)의 지극한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행여나 아들이 가난 때문에 주눅들까봐 노심초사하여 아들의 친구대접에 소홀함이 없었고 덕분에 남들은 박제가의 찌들어가는 집안형편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랑을 쏟았던 어머니였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여 박제가는 이미 15세때 시(詩), 서(書), 화(畵)로 장안에 이름을 떨쳤다.

참고 자료

북학의 (조선의 근대를 꿈꾼 사상가 박제가의 개혁 개방론)
박제가 | 안대회 | 돌베개 | 2003년 02월 24일
북학의
박제가 | 김승일 | 범우사 | 2004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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