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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경제사]조선식산은행-성업사, 블이흥업, 조선개척에 대해서

저작시기 2006.04 | 등록일 2006.09.2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불이흥업(주)
(2) 성업사
(3) 조선개척(주)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일제하 조선식산은행은 산하에 다수의 자회사와 손회사를 거느린 금융 ‘콘체른’의 지주회사였다. 조선식산은행에서 전액 출자, 창업요원 전원 파견으로 설립한 성업사가 자회사의 예이고, 이 성업사가 불이흥업과 조선개척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장악함으로써 두 회사를 손회사로 지배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성업사, 불이흥업, 조선개척이 어떻게 흡수, 합병되어 모회사-자회사-손회사의 구조를 갖추어 가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불이흥업(주)
불이흥업주식회사는 일제하 등정관태랑이 설립한 농업회사이다. 등정이 불이흥업의 설립에 착수한 것은 서선사업지의 기공식을 거행한 이듬해인 1914년 초였다. 창업기(1914~1919) 불이흥업의 최중점 사업은 등본합자이래 추구해 온 수리사업이었다. 창업 초 부채비율이 높았는데 오히려 전시호황하에서 재무 레버리지 효과에 의해 수익률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1910년대 말 불이흥업은 창업기의 이러한 성과를 배경으로 회사조직 전반에 걸친 개편도 단행했다. 자본금을 5백만원으로 증자하며 20년대를 맞은 불이흥업은 증자 전 착수한 옥구간척사업과 익옥수조공사 및 서선농장과 대정수조확장·추가공사를 본격화했다. 익옥수조와 옥구간척공사가 질서를 잡아가던 1920년 불이흥업은 세 번째 농지조성사업으로 강원도 철원·평강군일대의 황무지개간사업에도 착수하게 된다. 이러한 신규 또는 계속사업으로 추진한 수리간척공사를 통한 농장증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불이흥업은 이를 주식발행에 의한 불입자본금과 회사순익에 기초한 제종의 적립금 즉 사내유보자금, 그리고 이상의 자기자본이 아닌 타인자본 특히 은행차입자금의 세 가지 방식으로 조달받았다. 그러나 창업기의 성과를 배경으로 불이흥업이 증자를 결정한 20년 4월은 적기가 아니었다. 20년 반동공황은 그 직전까지의 투자의욕을 일시에 냉각시키고 20년대의 일본경제를 만성불황기로 만들었다. 이는 자본시장은 물론 상품시장 특히 미곡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만성불황으로 신주 불입이 부진하고, 미가하락과 부작으로 순익이 줄어 내부자본적립도 여의치 않자 불이흥업은 타인자본으로 사업을 해 갈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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