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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한초(漢初) 정치상황, 무제(武帝)의 정책과 유교의 국교화

저작시기 2006.09 | 등록일 2006.09.2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초(漢初) 정치상황, 무제(武帝)의 정책과 유교의 국교화

목차

Ⅰ. 한초(漢初)(고조~문·경제)의 정치상황
Ⅱ. 한무제 시기의 대외관계와 신경제정책
Ⅲ. 신재정정책의 내용
Ⅳ. 유가의 국교화

본문내용

Ⅰ. 한초(漢初)(고조~문·경제)의 정치상황

진을 멸망시킨 항우와 유방의 두 세력은 패권을 다투며 5년 이상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B.C.202년에 유방에 의하여 한제국이 건설되었다. 황제로 등극한 유방의 급선무는 왕조의 기반이 되는 통치제도의 확립과 항우와의 항쟁과정에서 공이 컸던 제후들에 대한 포상, 그리고 장기간의 전쟁으로 황폐된 민생의 안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급선무는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다.(낙양 -- 장안) 다음문제는 천하통일 사업을 완수하는 공을 세운 제장(諸將)들에 대한 포상문제였다. 그러므로 유방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통하여 이들 공신(公信)들을 열후 제후왕에 봉하였다. 열후로 봉해지면 최상위의 작위가 주어졌고 세습되었으며 봉읍에서 징수되는 조세는 모두 열후의 수입으로 되었다. 제후왕은 근친자와 특별한 공신에게 주어졌는데 이성제후국은 한왕 신, 초왕 한신, 회남왕 영포(英布), 양왕(梁王), 팽월(彭越), 연왕(燕王) 장여(丈餘), 조왕(趙王), 장이(張耳),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의 칠국(七國)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왕실의 이해관계와 안전에 따라 변경되기도 하였으며 이와 병행하여 유방은 자신의 아들과 일족을 왕으로 봉하여 동성제후(同姓諸侯)가 출현하였다.
이들 제후왕은 대체로 수개의 군 또는 수 십개의 현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또한 제후국은 각기 국(國)으로 불리웠으며 국내의 통치는 모두 제후왕이 장악하고 있었고 중앙정부의 통치조직에 비해 규모는 작았으나 독립된 관료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관료의 임명에서 상국(相國)(승상(丞相))만 중앙정부에서 임명하고 그 외의 관료는 모두 제후왕이 독자적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제후왕은 이런 점에서 제후의 봉국은 주대의 제후국과 같은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였고 이같은 현상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이탈하여 독립화되는 경향이 더욱 심하였다.
따라서 한초의 황제 지배권은 진제국에 비하여 볼 때 아주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현상은 궁극적으로 한고조 유방이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들 제후왕들은 한초전(漢楚戰)을 통하여 풍부한 전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용병(用兵)과 지략(智略)에 출중하였으며 막대한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대하여 심각한 위협적인 존재로 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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