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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연구회

저작시기 2006.09 | 등록일 2006.09.20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100원

소개글

극예술연구회의 창립배경과 목적 그리고 활동들에개해서 살펴보고
극예술연구회의 연극사적의의를 살펴본다

목차

1.서론
2.창립배경과목적
3.활동
4.작가의작품과연출들
5.연극사적의의

본문내용

서론
1930년대는 근대 연극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연극이 그 양식과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연극구조까지 크게 변화를 겪는 시기가 바로 1930년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1930년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연극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보는 극예술연구회도 바로 1930년대에 조직되었다.
극예술 연구회가 한국 신극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1931년 발주한 이래 1939년 까지 존속하면서 해방 전 연극사의 주춧돌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마무리 지었으며, 해방 후에도 극예술연구회의 출신들이 대한민국 연극계의 제1세대로 극계를 이끌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극예술연구회의 활동을 되짚어보고, 그들이 한국연극사에 남긴 영향을 살펴보겠다.

1. 창립배경과 목적
3.1 운동과 함께 국민적 지각이 일어나서 젊은이들은 앞 다투어 일본 유학길에 올랐었다. 그리하여 서양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로 해서 청년들은 외국문학을 많이 전공했다. 당시 법학이나 정치,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을 공부해 보아야 식민지 관리로 진출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설사 등용된다고 해도 친일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뜻있는 젊은이들은 인문과학이나 예술 공부를 많이 했다. 1926년에 동경에서 생겨난 해외문학파라는 것도 바로 그런 외국문학도들의 결집체였다.
그런데 해외문학파들이 유학을 끝내고 속속 귀국한 것이 대체로 1928년서부터 1930년 사이였다. 이들은 대체로 신문사 기자나 고등보통학교 및 전문학교의 교수로 봉직하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뭔가 보람 있고 큰일을 하고 싶은 욕구에 불타고 있었다.
그런 때에 마침 축지소극장의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있었던 홍해성이 귀국한 것이다. 연극밖에 모르는 홍해성은 극단 신흥극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공연을 가졌으나 실패했고 가족의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다름 아닌 연극영화전람회라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장한기 ‘한국 연극사’
유민영 ‘한국 근대 연극사’
최웅 유태수 이대범 ‘한국의 전통극과 현대극’
이미원 ‘한국 근대극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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