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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관한 일본의영유권 주장논거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17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요즘 독도가 메스컴에서 자주 다루어 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논거를 여러가지 각도에서 조명해 놓은 글이다.

목차

1. 영유권분쟁
2.독도문제의 경과

본문내용

1)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①조선의 공도(空島)정책
실제 일본은 1618년부터 1697년까지 약 80년 동안 울릉도, 독도에 침범하여 울릉도의 나무를 벌채해가고, 독도해역에서 어로활동을 했었다.
당시 일본막부는 오타니 가문과 무라까와 가문 두 가문에게 1618년에 울릉도 도해 면허증, 그리고 1661년에는 독도 도해면허증을 발급해주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점은 두 가문이 막부에 도해 면허증을 신청할때 `울릉도가 무인도`라는 이유로 신청했으며, 이런 이유로 도해면허를 막부에서 허가해주었으며, 또한 `도해면허증` 자체가 필요한 이유가 울릉도, 독도가 외국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영토였다면 그러한 면허증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1618년부터 일본은 울릉도, 독도에 건너와서 어로, 벌목활동을 하다가 1692년에 1차 울릉도에서 조선인을 만나게 되고, 드디어 1693년에 흔히 알려진 `안용복 사건` 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안용복이 두차례에 일본에 건너가 활약으로 1696년에 일본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받아내게 된다.
자, 그런데 왜 80여년간 일본인이 울릉도,독도에 와서 활동하는게 가능했는가?
다름아닌 조선정부의 공도정책(섬을 비우게 하는 정책) 때문이었다.
조선 태종(1417년) 이후 조선은 울릉도 독도에 대하여 사람이 살게 되면 해적, 왜구들의 침략을 받게 되어 그들의 근거지가 될 것이므로 그러게 되면 강원도 해안까지 왜구들이 자주 밀려오게 된다는 이유로 아예 울릉도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왕래가 끊겼으며, 일본인이 울릉도, 독도에 와서 활동을 하는게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이러한 정책은 고자료중에 `울릉도 독도의 위치가 반대로 표시되는 지리적 인식의 부재로까지 확장된다.
이에 대하여 일본은 `조선시대에 독도를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한다. 즉, 공도정책 자체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 포기정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비록 공도정책을 썼지만, 간간히 수토관 이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울릉도, 독도를 관리했었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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