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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베리아 고대문화의 한국적 의미 -청동기 문화의 고고학.종교.철학적 접근-

저작시기 2006.09 |등록일 2006.09.16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서론
1. 고고학적 관점
Ⅰ. 시베리아 청동기 문화
(1) 西 시베리아 청동기 문화
A. 타스민 문화(기원전 3천년기 초)
B. 아파니시예보 문화(기원전3천년기 중엽∼2천년기 초)
C. 카라수크 문화(기원전 14/13∼8세기)
(2) 東 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
A. 글라스꼬보 문화
B. 으이므이야흐따흐 문화
Ⅱ.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
2. 종교학적 관점
3. 결론 -철학적 관점-

본문내용

시베리아와 한국의 문화는 많은 면에서 비슷하지만 또한 다른점도 발견된다. 그리고 왜 한민족의 기원관 관련해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
이는 한민족의 형성이 다문화 공존이라고 생각한다. 단군 신화에서도 보았듯이 단군은 외부의 존재였다. 그러나 외부의 종족은 자생하던 종족과의 대결과 투쟁을 통해서 뿌리를 내렸다기 보다는 화합과 공존의 상생의 길을 모색하였다.
단군은 동이족 또는 몽고인 이었다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어느 종족인 것이 아니라 성숙한 문명을 성립하였다는 것이다.
초원에 살던 때의 문화로는 중국 중원을 차지한 화하족들과 대결할 수 없었으며 자기를 강화하면서 상대방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여 더욱 우수한 문화를 창조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은 문화는 발전하여 원시 몽고 문화에서 탈피해 나왔던 것이다. 즉 우리는 민족 구성에서는 다일 민족이지만 문화 구성은 복합적이라고 본다. 즉 지금의 만주 일대를 포함하여 한반도에 이입된 사람들은 일시에 모여든 거시 아니라 오랜 옛날 원싱 몽고 종족 때부터 은이 망한 시기, 심지어 중원이 전란에 휩싸였던 전국말기, 진라 때 등등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이입해 왔다는 것이다.
한민족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외례문물을 받아 들였다. 특히 종교의 차원에서 무교는 유·불·도 공존의 상황에서 중심의 자리에서는 벗어 났지만 외래종교와 상호 교류하고 영향을 주었으며, 명이 망한 이후 조선을 소중화라고 할 만큼 학문의 역량도 높았다.
이제 우리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반만녀의 역사속에서 창출된 문화유산, 그 중에서도 조화의 원리의 관점을 받아 들여 학문의 역량을 높여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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