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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역사적 문화제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16 한글파일한글 (hwp) | 2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제주도의 역사적 문화제인 항파두리, 용담동 무덤 유적, 삼성혈, 관덕정, 오현단, 제주읍성터, 삼양동 선사유적, 조천 만세동산, 연북정 등에 대한 역사와 씀임세, 그리고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목차

1. 항파두리
2. 기획- 제주 삼별초에 얽힌 전승
3. 용담동 무덤 유적
4. 삼성혈
5. 제주의 시조설화와 그에 관한 다른 유적들
6. 관덕정
7. 오현단
8. 기획글 - 오현단의 인물들
9. 제주읍성터
10. 삼양동 선사유적
11. 조천 만세동산
12. 연북정

본문내용

遺物槪觀-항파두리
항파두리
삼별초 세력은 원종 12년(1271) 5월 진도에서 항거하다가 몽고와 고려 연합군에 의해 밀려났다. 그 결과 세력의 일부가 제주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고, 여기에서 이후 3년 동안 고려 최후의 반몽 세력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제주 입거에 대해, 《고려사》에서는 「적장 김통정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탐라로 들어갔다」 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해도에 근거하고 있던 유존혁(劉存奕)은 삼별초 세력의 제주 입거 소식을 듣고 선단 80여척을 끌고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본다면 제주도 삼별초 세력은 진도로부터 탈출한 세력이 중심을 이루면서 아울러 여타 남해 연안 도서로부터 이동한 세력, 그리고 이전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 세력 등이 합류하여 항전 활동을 재정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로 거점을 옮긴 삼별초 세력이 항전의 중심으로 삼은 곳이 바로 항파두리성이다. 삼별초 세력은 김통정 장군의 지휘 아래 항전을 대비, 내외 이중으로 된 성을 쌓았다. 내성은 둘레 700m 정도의 사각형의 석성(石城)이고, 그 바깥의 언덕과 계곡을 따라 약 15리에 걸쳐 최대한 자연 지형을 이용해 타원형의 토성(土城)을 축조했다. 성내에는 백성들을 살게 했고 석축(石築)한 내성에는 관아를 두었다. 이 지대는 높고 동서로 하천이 있어서 천연적 요새를 이루며, 성 밑에 수량이 풍부하여 언제나 흐르는 구시 물과 옹달샘이 있었으므로 이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항파두리성은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다. 성의 길이가 6km나 되는 제법 큰 규모의 성인데다, 성 상단 높이는 4~5m, 성 너비 는 3~4m로 계단 현이 단을 두어 외측으로 방어가 되게 하였다. 성의 구조는 하부 틈에 잡석을 깔고 2층에는 진흙다짐, 3층에는 잡석과 진흙, 그리고 강화다짐과 진흙다짐을 한 후 잔디를 입힘으로써 성위에서 군사들과 군마들이 다녀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도록 과학적인 공법을 사용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문화유산답사회, 1994《답사 여행의 길잡이》, 돌베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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