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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답사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15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창경궁을 답사하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주요 장소에 대한 사진을 같이 묶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젊은이의 거리라는 대학로를 거치고 잠시만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에 창경궁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경궁의 문은 남향이 아니었습니다. 조사 해 본 결과 이유는 `출생 배경`이었습니다. 왕보단 `윗사람`들을 위해 지었기 때문이라는 군요. 처음에는 세종이 은퇴하신 아버지 태종을 위해 조그만 거처(수강궁)를 마련했고 그걸 성종 때 한껏 키워 `재건축`한 게 창경궁이랍니다. 성종 역시 조모인 정희왕후와 생모인 인수대비, 숙모인 안순왕후 등 윗전을 모시기 위해 지었답니다. 대비는 왕의 왼쪽에 앉는 것이 법도라서 왕이 머물던 창덕궁의 왼쪽에 동향의 궁궐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창경궁은 왕보단 `왕의 여자`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 되었고. 그래서 `여인천하`의 갖가지 암투가 벌어진 곳도 바로 창경궁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슬프고, 어찌 보면 외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궁의 숱한 여자들이 딱 한남자만 보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 명정문에서 사진을 찍고 배산임수의 지리 조건을 만들어주는 금천(禁川)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하천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강물도 아닌 북한산에서 흐르는 개울을 명당의 조건으로 사용하게 한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웠습니다. 뭐, 그렇긴 하더라도 지금은 좀 더러워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발견 한 명정문 처마의 시멘트 칠 역시 왠지 기분을 숙연해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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