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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 미녀와 나의 이상형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14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중국의 4대 미녀>

물고기가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목차

서시
초선
왕 소 군
양 귀 비

본문내용

①서 시(西 施)
- 춘추 시대, 월나라 왕(越王) 구천(勾踐)과 오나라 왕(吳王) 합려(闔閭)의 전쟁에서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맹장 오자서(고사성어 일모도원 참조)와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의 도움과 `섶 위에서 잠을 자고[와신(臥薪)]`하는 등 절치부심으로 결국 월왕 구천에게 복수를 하였다.

전쟁에 진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하고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상담(嘗膽)] 일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사성어 와신상담 참조)

이 과정에서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려)가 보복을 위해 연대불명의 중국의 4대 미녀중 하나인 월나라 최고 미인인 서시(西施)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즉, 전쟁에 패한 월 구천이 승자인 오 부차에게 준 여인이 바로 서시이다.

서시의 출생 및 사망 연도는 기록에 없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이니 대략 기원전 500년 정도에 출생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녀는 땔나무 장수의 딸이었고 선천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서시는 가슴앓이 병이 있었는데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매우 아름다웠지만 눈살을 찌푸릴 때 더욱 아름다워 추녀들로 서시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고사성어 서시빈목 참조)

결국 미인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은 부차는 구천에게 패하게 되었다.

서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미녀를 바쳐 미인계를 쓰고자 했던 월 구천의 모사 범여가 서시를 궁중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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