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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헤르메스 신상 훼손사건

저작시기 2006.09 |등록일 2006.09.1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장원씨의 헤르메스 신상 훼손사건 논문 요약입니다.

서양 고대사에서 알키비아데스의 스파르타로의 도망, 시칠리아 대원정의 실패, 헤르메스 신상과 관련된 논문 요약입니다.

목차

I. 서론
II. 헤르메스 신상의 기원
III. 헤르메스 신
IV. 헤르메스 신상의 훼손사건
v. 결론

본문내용

기원전 415년 시실리 원정을 준비하고 있던 아테네에서 일단의 무리가 도시 이곳저곳의 헤르메스 신상을 훼손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처음에는 단순사고로 생각하였으나, 점차 도시 전역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음이 알려져 반란의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명망 있는 시민들이 잡혀 가고 원정대를 이끌 지휘관들이 탄핵받고, 재판에 붙여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헤르메스 신은 여행자들의 신이며, 헤르메스 신상에 가해진 만행은 시실리 원정의 암운을 드리우는 사건이었다. 이 범죄는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아테네 민주정 당국은 막대한 상금까지 걸고 철저하게 조사했으나, 주모자와 실행자를 밝혀내는데 실패했고, 둘째는 이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 문화적인 매트릭스라는 것이다. 아테네에서 종교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아테네인들에게 훼손당한 신은 충격과 혼란이었을 것이다.
아테네인들에게 헤르메스 신상이 갖는 전반적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그들이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나아가 헤르메스 신상의 절단사건을 아테네의 사회종교적인 매트릭스에서 이해해 보자.

II. 헤르메스 신상의 기원

몇몇 학자들이 hermaios lophos에서 헤르메스 신상의 기원을 찾는다. 이는 헤르메스 신을 모신 돌무더기로 오딧세이에서 이미 표적으로 사용되었고, 후대에는 중요한 경계표석이 되었다. 아이트렘은 헤르메스 신상이 솔론시대에 흔한 무덤 표석이었다고 주장한다.
6세기 말에 이르면, 헤르메스 신상의 존재는 많은 곳에서 증명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각형의 헤르메스 신상과 도기의 그림에 최초의 헤르메스 신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대략 520~500년경으로 보인다. 헤르메스 신상의 기원에 관해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문헌에 보면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이 히파르코스가 세웠다는 설명이 있다. 이를 증명하는 주 텍스트는 유사 플라톤의 hipparchos이고, 또한 고고학적인 자료로도 뒷받침 되는 바, 바로 epitetos의 컵이 그것이다. 이 컵의 그림에는 헤르메스 신상을 만들고 있는 장인의 모습이며, hiparchos kalos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참고 자료

서양 고대사 강의, 서양사 개론을 참고하면 논문요약의 이해에 편리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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