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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제례음식과 상차림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12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제례음식과 상차림에 대한 자세한 레포트, 특히 컬러그림 삽입이 많음

목차

1. 제기와 제구
2. 제수와 진설
가. 진설의 의미
나. 합리적인 진설법의 예시

본문내용

제례 음식과 상차림


조선시대 이전의 제물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삼국사기』제사조의 기록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각기 시조묘를 세워 제사를 모셨고, 오묘의 제에서 풍년일 때는 대뢰(소), 흉년일 때는 소뢰(양)를 썼다’고 한 것 등으로 미루어 고대사회의 제에서는 생(통째로 제사에 쓰이는 소)을 일차적으로 올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대가야 수로왕의 제를 모실 때의 제물이 술, 감주, 병, 반, 다, 과였다고 하며, 『고려도경』에서는 ‘도성 중심 백리 안에 있는 신사에는 사시에 관원을 보내어 대뢰(소, 양, 돼지의 3생을 갖춘 제물이었으나, 후에는 소만을 일컫게 됨)로써 제를 지내게 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려 초기에 신사에 지내던 제물이 『삼국사기』오묘조의 제물과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대로부터 제1의 제물은 생이었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음식이 생활의 발전과 함께 이용되었다.
한편 조선시대 가정에서 행하는 의례 중 가장 정중하게 받들어야 했던 것이 제사이다. 송우암 선생이 출가하는 딸에게 준 『계녀서』중 제사 받드는 도리에 대한 글을 보면 ‘제사는 정성으로 청결하게 하며 조심하는 것이 으뜸이니, 제수 장만할 때 걱정하지 말고, 하인도 꾸짖지 말고, 소리 내어 웃지 말고, 겉으로 나타내어 근심 말고, 없는 것을 구차하게 얻지 말며, 제물에 티끌이 들어가게 하지 말고, 먼저 먹지 말고, 많이 장만하면 불결하니 쓸 만큼 장만하고, 일년 제수할 것을 생각하여 훗 제사에 대비하라’고 이르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가정에서 제사를 모실 때의 기본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 제기와 제구

제사음식을 담는 그릇을 제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백자로 된 사기, 나무로 만든 목기, 놋쇠로 만든 유기 등을 사용했다. 『증보 사례편람』구제기에서 ‘제상이나 교의 및 제물을 담는 제기는 고중에 보관하고 부득이 고가 없을 때에는 궤짝에 넣어 보관하여야 하며, 절대로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쓰여 있다.
또한 『왕제』와 『전례』에서 ‘대부는 제기를 빌리지 아니하며, 설혹 제기를 준비하지 못하였다 해도 평소의 그릇을 쓸 수는 없으며, 군자는 설혹 빈곤하여도 제기는 팔지 아니하고, 제기가 못쓰게 되면 땅에 묻는다.’는 내용에서 제기에 대한 관리 준칙을 알게 한다.
『사례편람』성생척기구찬조에서는 ‘제물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이 생을 살피는 일이며, 이 때의 주인은 심의를 입고 장부들을 거느리고 생을 살피되 잡는 것을 가서 보고, 주부는 배자를 입고 부녀를 거느리고 제기를 깨끗이 한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먹어 보거나 고양이, 개, 벌레 등이 더럽히지 않도록 한다.’고 이르고 있다.
이러한 규범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 제삿날이면 주부는 목욕재개하고 청담 또는 담색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제물 준비에 임한다. 제기를 각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 자료

조후종, 윤숙자 (2002), <통과의례와 우리 음식>, 한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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