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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전국시대를 알리는 오닌의 난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6.08 |등록일 2006.09.11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1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오닌의 난에 대하여 적어봤습니다.

목차

들어가기에 앞서
1.카키츠(嘉吉)의 변
2. 하타케야마(畠山)가문의 분열
3. 장군가의 상속 전쟁
4. 고료우(御霊)사 전투
5. 대란발발
6. 서군의 반격개시
7. 지방까지 퍼져가는 전화
8. 불완전한 강화

본문내용

7. 지방까지 퍼져가는 전화
오우닌(應仁)2년 1일, 동군은 서군에게 불의의 기습을 하고 전쟁의 상황을 호기로 전환하려고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3월, 4월, 5월 양군은 공세로 전환하였지만, 그다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불과 동군이 세력을 회복할 정도였다.
전쟁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쿄토의 전투는 교외까지 확산되었다. 오히려 도심보다 교외가 더욱더 격전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동에서는 6월, 동군이 히가시야마(東山)부터 야마시나(山科)까지 제압하고 히에이(比睿)산의 승병도 이것에 호응해서, 이치죠우지(一乘寺)마을 부근에까지 진격했다. 서군도 8월부터 10월 걸쳐서 반격으로 전환했지만, 전지역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남방에서는 후시미(伏見), 토바(鳥羽)의 일대를 서군이 확보하고 있었지만 8월에 들어와서는 동군이 진출해서 후카쿠사(深草) 방면을 차지했다. 쿄토에서는 오오우치(大內)군이 공격을 시작해 10월에 들어가면, 겨우 토바(鳥羽)부근을 제압하게 되었다.
쿄토 서쪽에서는 더욱더 격렬한 전투가 행하여졌다. 8월부터 동군의 야마나우마노스케(山名馬助)가 니시카오카의 국인들을 모와서 활약하고 9월에 들어가면 동군 단바(丹波)수호(守護)대리인 나이토우사다마사(內藤貞政)가 탄바(丹波)의 세력을 이끌고 쿄토로 진입했다. 서군은 사가(嵯峨)방면으로 향하였지만 교토에 있는 동군도 행동을 같이 하여, 후나오카(船岡)산의 서군 진형을 공격했다. 이 때, 천룡사(天龍寺)ㆍ인화사(仁和寺)ㆍ임천사(臨川寺)등 이름난 사원들도 전쟁에 휘말려 불탔다. 서군은 탄바(丹波)세력을 격퇴하고, 후나오카(船岡)산의 진지를 수비했지만, 쿄토 서쪽에 대한 지배권은 붕괴되고, 결국은 카에데(鷄冠井)등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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