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문학]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09 | 최종수정일 2014.07.30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신체시의 의의에 대해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六堂 崔南善
2. 신체시의 출현, 『少年』誌
3. 海에게서 少年에게, 그 새로움
4. ‘바다’와 ‘소년’
5. 신체시와 시사적 의의

본문내용

1. 六堂 崔南善

우리의 近代詩史에 남겨놓은 육당 최남선의 공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육당은 시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바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세대에서는 春園 이광수와 함께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며, 주로 창가와 시조 제작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여러 권의 詩歌集을 낸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시 형식을 위한 어떠한 미적 노력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육당은 매우 의식적으로 새로운 시에 대한 형식 시험을 시도했다. 새로운 시를 위한 근대적인 형식 시험은 육당의 신체시 이후부터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신체시가 근대 자유시 형성의 유일한 동기라 볼 수 없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와 시금석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2. 신체시의 출현, 『少年』誌

신체시가 첫 선을 보인 것은『소년』지의 창간호(1908년 11월)을 통해서였다. 최남선은 자신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인『소년』지 첫머리에「海에게서 少年에게」를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 작품보다 조금 먼저 창작되거나 발표된 작품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신체시라 여겨질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즉 1907년에 지었다고 작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舊作三編」이나 1908년 2월~4월 사이에 大夢崔란 이름으로『대한학회월보』에 발표된「모르네 나는」외 5편의 시들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선행된 신체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舊作三編」의 경우 발표가 지체된 특별한 상황적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표일 기준을 폐기하여 소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모르네 나는」외 5편의 시들의 경우는 대체로 명백한 정형률에 의존하며, 신체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진취적인 기상과 같은 주제 의식이 결여되어 있어 타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장도준,「육당 최남선의 신체시와 시사적 의의」, (『배달말』, 제26집, p. 80.)
『少年』誌의 편집방향은 크게 두 흐름으로 요약된다. 해외문화의 수입과 자국문화에 대한 재인식이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부터 보면, 『少年』誌는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인습적인 낡은 문화를 개조해야겠다는 개화기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발행 겸 편집자인 육당 자신의 외향성과 함께 그의 진보적 일면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그의 외향적 충동은 ‘바다’에 대한 그의 집요한 관심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는 『少年』誌 창간호를 ‘바다’ 특집으로 엮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다’에 대한 관심을 제기한 바 있다. 권두시로 제작․발표된 「海에게서 少年에게」는 이런 점에서 볼 때, 『少年』誌 창간호뿐만 아니라 23호에 걸친 이 잡지 전체의 편집방향과 성격을 암시하고 있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참고 자료

김근철 著,『한국 근대시의 이해』, 문창사, 1993.
김용직 著,『한국근대시사』, 학연사, 1986.
김열규·신동욱 共著,『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새문사, 1981.
김재홍·정한모 共著,『한국대표시 해설』, 문학세계사, 1995.
장도준,「육당 최남선의 신체시와 시사적 의의」,『배달말』, 제26집, 2000.
서영채,「최남선 시가의 근대성에 관한 연구」,『민족문학사연구』, 제13집, 1998.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