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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저작시기 2003.07 |등록일 2006.09.08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3,500원

소개글

대공황이라는 경제사적 사건의 의미와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고, 그 충격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비단 자신의 경제적 지식만을 넓히고, 감상문을 적어내는 정도를 넘어서, 같은 학문을 배우는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 어떠한 생각을 담아내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목차

-#1.제1차세계대전에서 대공황까지
-#2.대공황충격의 식민지 및 주변부로의 이전
-#3.대공황당시와 현재의 유사성에 대한 비교
-#4.유럽으로 전파된 위기
-#5.대공황의 정치적 귀결과 제2차세계대전으로의 전파

본문내용

1. 대공황의 1차대전 전후의 유럽(영국)과 주변부(인도)의 연계
대공황의 원인을 찾는다면 국제 신용의 위축을 제 1 로 뽑을 수 있다.
경기는 언제나 성장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성장해간다. 그러나 1차대전 전후의 유럽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번의 경기후퇴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국제 신용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영국은 1차대전 전후에 세계 금융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그 자본수익은 1년 대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경기가 더 악화될 것으로 생각해서 채무자들은 채무를 갚지 않게 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채권자들은 더 이상 대부를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 해서 경기는 더욱 더 악화되고 국제 사회의 신용은 악화되어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른바 self-fulfilling prophecy(자충예언)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또한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막대한 전쟁비용을 갚아야했고 영국은 옛날의 국제적 위상을 되찾기를 바랬다. 이것은 미국의 공황이 유럽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나았다. 이것이 어떻게 주변부(농업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가는 살펴보면 전간기(戰間期)에 농업생산성이 향상되어 유럽에서는 밀이 과잉 공급되어 밀 값이 폭락했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이 조절 가능한 양이었으나 국제 신용망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경기와 마찬가지로 농산물가격도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농산물 가격은 더욱 더 떨어지게 되고 농촌생활은 어려워져갔다. 또한 이런 불경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디플레이션 정책을 실행했고 이 정책으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서 빚을 지고 있었는데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농민들의 채무는 증가하기만 했다. 이런 정책은 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오히려 실질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물가가 하락하고 농산물의 가격은 계속하락하기만 했다. 정책결정자들은 근로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 시기에는 농업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고 하고 있었다. 보호무역 역시 농촌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세금을 좀처럼 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농촌경제는 대공황의 피해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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