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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노블리스오블리제(nobless oblige)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09.08 한글파일한글 (hwp) | 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노블리스오블리제(nobless oblige)에 대하여 서양과 동양의 노블리스오블리제의 핵심적인 요약정리 내용입니다. 글씨크기 10포인트로 늘리면 4장정도의 분량의 레포트 입니다.
교수님께 A+ 받은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 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부의 대가로 잃어버린 한국형 노블리스 오블리제, 선비정신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당나라의 군사지원에서 많이 찾지만, 그보다는 화랑으로 대표되는 신라 지배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있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서기 660년 김유신의 동생 흠춘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에게 수세에 몰리자 아들 반굴에게 “지금이 충과 효를 이룰 수 있는 기회”라면서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반굴의 장렬한 전사를 본 장수 품일은 자신의 아들 관창에게도 같은 행위를 요구했고, 두 장수 아들의 전사는 신라 군사들의 마음을 격동시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김유신의 아들 원술은 나당전쟁 때 석문전투에서 패전한 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
반면 백제는 의자왕과 호족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한창이었고,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 사이의 권력투쟁 끝에 장남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했다. 세 나라의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차이가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을 것이다.
고려의 승군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통의 산물이다. 문종의 왕자 의천이 승려가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불교국가 고려에서는 승려는 지배층의 일원이었다. 현종 1년(1010년)거란이 침략하자 승장 법언이 9000명의 승군을 거느리고 싸우는 등 승군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신의 몸을 던졌다.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때 각지에서 양반과 유생들이 주도하던 의병이 일어난 데서 볼 수 있듯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이 지배층 일부에서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치열한 당쟁 끝에 보수 세력인 노론의 일당독재가 고착화한 이후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라지고 일반 백성들을 착취하는 특권층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심지어 병역의 의무도 외면하고 그 부담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떠넘길 정도로 비양심적인 특권층이었다. 노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길 때 집권당이었으나 나라가 망한 뒤 아무도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다. 반면 야당이었던 소론의 이회영 6형제와 재야였던 남인의 이상룡 등은 독립운동에 나서 전 재산과 목숨을 바쳤다.
해방은 이들 노론과 친일파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사회 지배층의 지위를 독립 운동가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 프랑스에서처럼 처형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조성된 냉전과 이승만의 집권은 친일파들을 다시 득세하게 만들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들에게 다시 억압받았다. 친일파 출신의 사회 주류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먼 일이었다. 6.25전쟁 당시 병사들이 ‘빽’이라 외치며 죽었다는 일화는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친일파들은 군사정권과 결탁해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이 사회의 경제력을 장악했다. 우리 사회의 주류들은 병역의무 하나만을 보더라도 일반 국민들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행비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역사적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실종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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