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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9.07 | 최종수정일 2014.07.30 한글파일한글 (hwp) | 30페이지 | 가격 3,500원

소개글

애국계몽운동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머리말
Ⅰ. ‘애국계몽운동’의 용어와 시기 설정
Ⅱ. 1900년대 정치․사회적 배경
Ⅲ. 애국계몽운동의 사상적 배경
Ⅳ. 애국계몽운동의 노선
Ⅴ.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맺음말 ; 애국계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이미 19C 후기부터 봉건사회의 해체과정을 밟고 있던 조선은 ‘자주적 근대화’를 이룩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역사의 방향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조선은 스스로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인 민족국가를 수립하기에 앞서 외세의 강압에 의해 ‘문호를 개방(개항)’당하고 말았다. 개항 이후 자주적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한 모습들은 여러 곳에서 대두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래에서는 그 절정을 이룬 피지배층의 동학농민운동이 있었고, 위에서는 개화파의 근대적 개혁운동이 있었다.
개화파는 자신들의 목표를 정치변혁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현실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 진행단계상 처음인 개화운동은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갑신정변(1884)으로 나타났지만 광범한 국민적 토대가 마련됨이 없이 소수의 선각적인 정치세력에 주도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독립협회운동과 만민공동회운동도 갑신정변에서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광범한 국민적 기반을 확보하면서 국민계몽과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에 의해 비합법화되어 강제 해산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성립과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이 또 다시 근대적 개혁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제국주의 열강의 정치적․경제적 침탈은 그 이전보다 훨씬 심화되었다. 조선은 사실상 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많은 지식인들은 열강의 정치적․경제적 침탈에 대한 정부의 무능과 미온적인 개혁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에 대해 ‘乙巳保護條約’을 강요하였다. ‘조선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이루 어진 치욕적인 을사조약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은 민족적 울분과 함께 나라의 운명과 관련하여 새로운 운동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지식인계층은 일제침략에 대항하여 자주독립을 이룩하고 부국강병을 내용으로 하는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위한 경제자립운동을 비롯하여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 걸친 ‘愛國啓蒙運動’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운동의 주도층들은 개화파의 문명개화론, 개화자강론을 이으면서 경쟁 중심의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둔 현실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의 보급과 산업의 발달을 통해 실력을 양성하고 자강(自强)을 이루어 국권회복을 꾀하려 하였다. 문화 운동, 신교육 운동, 언론 계몽 운동, 민족 산업 진흥 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 및 신문학 운동, 국학 운동, 민족 종교 운동, 해외 독립군 기지 창건 운동 등은 모두 이 같은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참고 자료

강만길, 『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1994.
강재언, 『한국근대사연구』, 한울아카데미, 1984.
김창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범우사, 1995.
김태웅,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솔, 2003.
신용하, 『한국근대사와 사회세력』, 문학과 지성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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