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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 이제현의 생애와 문학관 및 연구사

저작시기 2001.09 |등록일 2006.08.30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익재 이제현의 생애와 문학관 및 연구사에 관련한 레포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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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제현의 생애
2. 이제현의 문학관

본문내용

역옹패설 후집에서 충선왕과의 문답을 정리한 부분을 살펴보면 건국 초기
에는 소박하면서도 진취적인 기상이 있어 대외적으로도 자주적인 자세를 지
녔다고 했다.그러다가 무신란을 겪으면서 혼란이 극심해졌으며,피신을 한
무리가 절에 머물다가 승려와 가까워져서 문학의 기풍마저 망쳐 글 다듬는
재주나 자랑하는 풍조가 나타났다고 했는데, 글 다듬는 재주나 자랑하는 무
리를 조충전각지도(雕蟲篆刻之徒)라 하고, 반대로 경전을 밝히고 행실을 다
듬는 선비를 경명행수지사(經明行修之士)라 했다.
조충전각 하는 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교를 확충하여 六禮(육예: 예
(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의 여섯 가지 기예)를 높이고 五
敎(오교: 오상(五常), 오륜(五倫)의 가르침, 즉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朋友有信을 말한다)를 밝혀서 先王의 道를 천명하게 되면 장구를
익히는 풍조가 없어질 것이라고 건의하였다. 즉 그는 경명행수를 위한 학문
을 實學,조충전각하는 학문을 虛學으로 보았던 바 이는 道學을 本으로,文
學을 末로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경서의 뜻에 충실한 문장이 곧 도를
나타내는 문장이요, 그와 같은 문장이 백성을 교화할 수 있으므로 문장의 잔
재주에만 익숙한 자는 배격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유가 경전
을 익혀 인격을 도야하고 또 경전의 뜻에 충실한 문장을 쓰는 것이 바람직
한 학문 및 문장의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역옹패설 후집서에서는 장구를 가다듬는 것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
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문예문 또한 부정하지는 않았으며, 六經을 최고의 문
장으로 인정하면서도 경세치용에 필요한 文이나, 詩또한 인간에게 필요함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의 評者들이 한결같이 익재에게 고문창도(古文倡導)의 공을 돌리고 있
는데 사실 익재는 고문이라는 말을 써서 특별히 의견을 개진하여 고문을 주
창하거나 실제 어떤 행동으로 고문 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익재의 고문창도의 공은 그 스스로 경전의 뜻에 충실한 문장 즉 고
문을 구사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麗末,鮮初의 문인들이 전래의 사장(詞章)
위주의 학풍에서 벗어나 도학 중심의 학풍을 이루게 하는 터전을 마련한 데
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그의 시관(詩觀)을 살펴보면 우선 그는 “옛 사람의 시는 눈앞의 景
物을 묘사하였지만 의미는 말밖에 있으므로 말은 끝났지만 맛은 끝이 없다”
(역옹패설 후집 1) 라고 하였는데,

참고 자료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 지식과 산업사, 1983.
국역 익재집 ⅠㆍⅡ, 민족문화추진회, 1985.
한국 한시 학회, 한국 한시 작가 연구, 태학사, 1995.
전영진, 한국 고전 문학사 파한집ㆍ역옹패설, 홍신문화사, 1995.
김건곤, 이제현의 삶과 문학, 이화 문화사, 1996.
허경진, 익재 이제현 시선, 평민사, 1996.
현종호, 국어고전 시가사 연구, 도서출판 보고사, 1996.
국어국문학회편, 한시연구, 태학사, 1997.
송준호, 한국명가 한시선 1, 문헌과 해석사, 1999.

하영남, 익재 이제현의 문학관과 시 연구,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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