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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의 의병 활동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8.29 워드파일MS 워드 (doc)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역사 관련 과목 레포트로,,
책과 인터넷을 참고하여 제가 직접 만든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되길 바랍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곽재우의 출생과 성장
2. 곽재우의 의병활동
(1) 정암진 전투
(2) 정암진 전투 이후의 생애
3. 곽재우의 사상

Ⅲ. 결론

본문내용

2. 곽재우의 의병활동

(1) 정암진 전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관군을 대신해서 싸운다. 임진의병의 시발이 되었다고 불 수 있는 전투는 곽재우에 의해서 이끌어졌던 정암진 전투로써 의병을 일으킨 과정, 조직, 전술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전투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고니시 유키나가 등의 일본군 22만명(육군16만, 수군 6만)으로 부산에 상륙한 이래 왜적의 진군이 계속되고 있었을 때, 곽재우는 구로다 나가사마가 지휘한 적 제3번대가 김해, 창원을 공략한 다음, 다시 영산, 창녕, 현풍 등 낙동강 동안의 요충지로 진출할 무렵인 선조 25년 4월 22일 의령에서 기병하였다.
왜적의 북진로 서남쪽 지방은 적의 침입을 받지도 않았는데 대부분의 수령들이 임지를 이탈함으로써 각 지방은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곽재우는 자기의 출생지인 의령에서 관군을 대신하여 향리를 지키고 적을 격퇴시키겠다는 충정으로 사재를 털어 최초로 의분에 찬 향민 10여명을 무장시켜 의병을 일으키고 점차 주변의 삼가 등지의 향민들의 호응을 받아 항전에 나섰다. 곽재우는 의병을 조직한 직후부터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지점인 지강에서 전쟁 물자를 싣고 낙동강을 왕래하는 적선을 상대로 교전을 하면서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기습을 통한 유격전술을 익혔다.
곽재우는 한양을 점령한 후 제도 공략에 착수함에 따라 낙동강과 남강의 지세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적의 도섭이 용이한 얕은 여울에 복병을 배치하고, 특히 적의 예상 접근로 상에는 목마다 경계초소를 설치하였다. 또한 날쌘 병사 10여명에게는 자신의 군복과 똑같은 붉은 비단으로 만든 홍의군복을 입혀 앞으로 적과 교전 시 이곳 저곳에 출몰함으로써 적을 기만하고 심리적으로 현혹시킬 준비를 하였다. 의병 상호간에는 음향, 불빛, 수기 등 각종 신호수단을 강구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또한 향민의 도움을 받아 적의 동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한 결과, 5월 하순 함안에 진출한 왜적이 진주 및 전라도로 통하는 요충지인 정암진 나루터로 공격하여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곽재우는 의령, 삼가 등지의 의병까지를 통합 지휘하여 정암진 나루터 방면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적장은 6월 초 전라감사를 사칭 위장하여 대군으로 정암진 공격에 나섰다. 이때 적은 정암진 부근의 강변 벌판에 진흙탕이 많아서 부대 기동에 불편한 것을 알고 선발대를 보내 주력이 쉽게 도강할 수 있도록 진흙이 아닌 단단한 곳을 골라 나무를 꽂아 표식을 해 두었다. 이를 안 곽재우는 은밀한 야간에 10여명의 날쌘 병사를 편성, 적이 꽂아놓은 표식을 진흙이 많아 도섭이 어려운 곳에 옮겨 꽂았다. 또한 만일 적이 도강 할 것에 대비, 부근의 유리한 지형에 복병을 배치하는 한편, 정암진 북안 주변의 기습이 용이한 조기에 주력을 분산 배치하였다.

참고 자료

곽재우연구, 이장희, 한국학술연구, 1983
임진전란을 통하여 본 의병항쟁사, 장병옥, 한원, 1991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들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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