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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B

서초패왕 (西楚覇王)을 보고 나서

저작시기 2006.08 |등록일 2006.08.2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영화 서초패왕을 보고 나서 쓴 영화감상문입니다..
최대한 자세히 쓰려고 노력했으니..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역사적 배경
초(楚), 한(漢)의 쟁패 : 유방과 항우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

(2) 『서초패왕 (西楚覇王) 』줄거리

(3) 역사적 배경에 투영된 영화 시청 소감

본문내용

초(楚)․한(漢)의 쟁패 : 유방과 항우
진승의 봉기에 호응했던 반란군 가운데 유력한 세력은 유방과 항우였다. 그 가운데 항우는 전국시대 초(楚)의 명문인 항씨(項氏)일족으로 조부 항연(項燕)은 초의 장군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항우 자신도 강담이 굳고 재능을 갖춘 인물로 숙부인 항량(項梁)을 수령으로 하여 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멸왕된 초왕실의 심(心)이란 인물을 세워 회왕(懷王)으로 삼아 초의 부흥을 주창하였다.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은 항우의 뛰어난 전술을 보고 점차 항우의 휘하로 결집하게 되었고 진의 반란 토벌군을 각지에서 패퇴시텨 진의 명장인 장함과 왕리(王離)가 도리어 초군에 귀순해버렸다.
한편 유방은 패(沛)의 풍읍(豊邑)에 살던 농민으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가문출신이었다. 방(邦)이라는 이름도 후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어릴 때 유협(遊俠)이 되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향리에 돌아와 사수(泗水)의 정장(亭鄣)이 되어 마을의 경찰과 같은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세황제초에 조영의 노역에 징발된 죄수들을 이끌고 함양을 향해 출발했는데 도중에 도망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아예 죄수를 모두 석방하고 자신도 풍읍근처의 소택지에 숨어 군도(群盜)가 되었다. 죄인의 일부와 패의 청년들 수백명이 그 휘하에 모여들었다. 후에 진승․오광의 반란이 일어나자 진의 토벌을 주창하면서 현의 하급관리였던 소하(蕭何)와 조참(曹參), 개 도살업자인 번쾌(樊噲) 등을 중심으로 3천명의 세력을 결집했으며 점차 병력이 증대되면서 항우와 연합하여 초군의 일익이 되었다.
당시 초의 군대내에서는 회왕을 중심으로 제일 먼저 진의 수도인 함양에 입성하는 사람이 진의 본거지인 관중(關中)의 왕이 된다는 약속이 있었다. 항우는 조(趙:하북성)의 반란군을 원조하기 위하여 북상했기 때문에 결국 유방이 함양을 함락시키니, 진의 공자 영은 유방에게 항복하여 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B.C.207년 10월의 일이었다. 유방은 진의 궁전이나 창고에 봉인을 하여 이를 보전하는 데 노력했고, 또한 진의 가혹한 법치주의에 시달렸던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통치의 세 가지 원칙만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둘째로 사람을 상해입힌 자와 셋째 도둑질을 한 자는 각각 정도에 따라 처벌한다는 세 가지 조항의 법[法三章]을 정하고 다른 진대의 법률을 폐지해버리겠다고 관중 사람들에게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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