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경영]기업인 박흥식, 김용주에 대해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8.28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기업인 박흥식, 김용주에 대해 쓴 레포트 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목차

Ⅰ. 박흥식
⑴ 상경 전, 용강에서의 활동
⑵ 지물업계로의 서울진출
⑶ 백화점업계 진출
⑷ 화신백화점의 체제정비와 경영확대
⑸ 통제정책 시행과 무역에의 도전
⑹ 해방 후 몰락과 재기
⑺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

Ⅱ. 김용주
⑴ 사업에 뛰어들기 전 김용주
⑵ 삼일상회로의 사업에의 시작
⑶ 해운업에의 도전
⑷ 해방 후, 해운업계에서의 활동
⑸ 방직업으로 다시 사업계에 도전
⑹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

본문내용

Ⅰ.박흥식


(1) 상경전, 용강에서의 활동

박흥식은 1903년 평남 용강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과 1916년에 형과 부친이 연달아 사망하여 그 자신이 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1916년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상업 활동에 나섰다. 그는 첫 사업으로서 미곡업을 선택하였다. 미곡판매업에 투신한 직후인 1918년부터 쌀값이 폭등하여 그는 많은 이윤을 축적할 수 있었다.
한편 박흥식은 지주경영과 상업 활동으로 축적한 자본으로 직접 인쇄업ㆍ지물업에도 진출하여 성공하였다. 그는 용강지역의 정치․사회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1923년에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벌어져 전국의 백여 개의 학교가 설립되자 설치비용을 기부하였고, 동아일보의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용강에 유치원을 직접 세웠고, 1925년에는 중등교육 과정의 용강농업학교도 설립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용강의 청년사업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2) 지물업계로의 서울진출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넓은 곳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드디어 상경을 결심하였다. 1926년 7월에 그는 서울에서 자본금 25만원(62,500원 불입)의 선일지물주식회사을 창설하였다. 용강에서 선광인쇄지물을 설립 경영했던 경험을 토대로 서울의 지물업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이렇다 할 연고 없이 상경한 그로서는 경영여건이 좋지 않았다. 이미 ‘지물업’ 업계는 일본인 상인들이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박흥식은 우선 서울 상업계에서 지명도가 높았던 인사들을 중역으로 영입하여 서울에서의 활동 발판을 구축하였다.
박흥식은 당시 한국의 신문용지 공급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인 지물상들과 경쟁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우선 그는 신문용지를 주요 판매상품으로 선정한 후 신문용지 수입처를 일본이 아닌 스웨덴, 캐나다 등지로 바꾸어 구입단가를 대폭 낮추었다. 또 한국인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1932년에는 신문용지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만큼 사업에 성공하였다.

(3) 백화점업계 진출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재차 사업 확대를 꾀하여 당시 유통업계의 총아로서 떠오르고 있던, 이른바 ‘유통업의 꽃’이라는 백화점업계로의 진출을 도모하였다.
박흥식이 백화점에 뛰어든 1930년대 초 서울의 상업계는, 일본인 백화점이 잇달아 설립되면서 한국인의 상권이 크게 위축된 때였다. 이들 일본인 백화점은 대규모 설비와 매장, 다량의 상품을 갖추기 위해 방대한 자본을 투자하였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