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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계지에 관해서

저작시기 2005.07 |등록일 2006.08.2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제가 직접 부산 용두삼공원가서 조계지비석도 찍고
자료도 모았습니다.
옛날 조계지 모습을 담은 책을 찾아서 그것도 찍은 파일을 첨부하였습니다.

목차

1조계제도
2 조계의 종류
3 조계와 지계
4 인천의 조계지
1) 일본 조계
2) 청국 조계
3) 공동 조계
4) 신동공사
4 부산의 조계지
1) 일본 조계지
2) 청국 조계지
3) 러시아의 조계지
4) 영국 조차지

본문내용

1조계제도
1. 조계 제도

◀ 1)조계 표지석
조계가 생기게 된 것은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동양에 진출하면서 무력을 앞세워 통상조약을 맺고 개항장에 그들이 자유롭게 자기 나라의 주권을 행사하면 살아갈 수 있는 영토를 확보하는데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일찍이 영국이 중국과 조계 계약을 맺고 1845년 중국 상해에 외국인 조계를 설치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1858년에는일본이 역시 미, 영, 불 등 서구 5개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동경과 히로시마, 나가사끼 등 5개 지역에 조계를 설치하게 되었으며, 우리 나라는 1876년 부산항을 시작으로 1880년에 원산 그리고 1883년 9월 30일에는 개항장인 인천 제물포에 일본을 비롯해 서구 여러 나라와 조계 계약을 맺어 조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2)부산 초량왜관 표지석

왜관은 일본사절과 상인이 조선에 와서 외교와 무역을 하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제포(현 진해 웅천) 부산포(현 부산 범일동) 염포(현 울산 염포동)등 세곳에 왜란이 있었으나 왜관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이전의 왜관은 폐쇄되고 일본사절이 서울로 올라가 조선국왕을 알현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1607년 신축된 두 모포왜관은 좁고 선착장시설이 빈약하여 여러 가지 이관논의가 진행되다가 마침내 초량왜관의 신축이 결정되었다. 1678년(숙종4)개관한 초량왜관(현 용두산 공원 주변)은 500명이상의 일본이 거주하였고 외교 무역을 위해 조선 측이 지어준 각종 건물이 즐비하였으며 일본인들도 자체적으로 생활에 맞도록 일본식 집을 지었다. 여기에는 의식주생활과 관련된 일본 물품을 파는 가게도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어 조선 속의 일본인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초량왜관은 넓은 부지 늘어나는 무역량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고 창고도 넉넉하여 양국 교류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2 조계의 종류

조계의 종류는 토지의 취득 방법에 따라 Concession 과 Settlement로 구분한다.

◦ Concession은 토지를 외국 정보가 차용하는 방법인데 그정부는 빌린 땅을 다시 자국민에게 분할 대여한다.
◦ Settlement는 외국인 개개인이 토지 소유자와 계약에 의해 빌려 쓰는 방법이다.

인천에서는 청국과 일본, 각국 조계 모두 Settlement 방식으로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일본은 인천을 제외한 부산, 원산, 마산에서 Concession방식을 채택했다

3 조계와 지계

◦ 인천 제물포 조계 협약에서는 각국 조계장정(1884. 10.3), 일본과의 조계약서(1883. 9.30) 등 모두 조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 청국은 인천에서 화상제계장정(華商地界章程 1884. 4. 2)에 의해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지계`란는 용어로 고쳐 사용되었고 그후 원 세계가 내한한 후에는 `조계`라는 용어로 고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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