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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문학개론]김동인의 문학적태도고찰과 작품소개(A+레포트)★★★

저작시기 2006.08 |등록일 2006.08.23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960원 (30%↓) 2,800원

소개글

8명의 조원들이 두달간 머리쥐어짜내 만든 레포트입니다

저희 조원들이 직접찾아 작성한 자료입니다.

교수님꼐도 칭찬많이받은 레포트이고...

정말 자신있는 자료입니다!!!!

많은도움될겁니다^-^

목차

1.자료 첨부
A. 작가 소개
B. 작가의 문학적 태도 고찰
1. 근대성: 김동인의 리얼리즘과 형식주의
2. 예술지향주의/ 탐미주의/ 유미주의
3. 일본문화: 고백형식 ․ 자아제일주의와 일본 사소설
4. 김동인과 이광수
C. 작품「약한 자의 슬픔」소개

2. 「약한 자의 슬픔」에 대한 우리의 생각
A. 김동인이 이광수의 계몽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B.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현실세계와 달라야만 예술적인가?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자료 첨부
A. 작가 소개
김동인(1900~1951)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 도쿄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 교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 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감자」(1925), 「광염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 하던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 보>에 연재, 1931년 서울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닮았다」(1932),「광화사」 (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 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1935년부터 「왕부의 낙조」등을 발표하고 야담사를 설립하여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설 쓰기에 전심하다가 몸이 쇠 약해진 후에 마침내 마약 중독까지 걸렸다. 병마에 시달리던 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에는 불경죄로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내고, 1944년 친일소설 「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는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과 단편 「망국인기」의 집필에 착수하였으나 생활고로 중단하고 한국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소설 외에 평론에도 일가견을 가졌는데 특히 「춘원연구」는 역작이다.
김동인은 작중인물의 호칭에 있어서 ‘he`, `she`를 ’그‘로 통칭하고, 또 용언에서 과 거시제를 도입하여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의식적으로 명백히 했으며, 간결하고 짧은 문 장으로 이른바 간결체를 형성하였다. 1955년 사상계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 학상‘을 제정․시상하였으나, 1979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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