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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제국과 총력전의 중압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8.16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이 레포트는 제2차대전때 일본제국이 폈던 총력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목차

1.대만과 조선의 경제적 변화
2.전시의 식민지사회의 변용
3.총검과 군화의 아래서 ― 제국의 전시동원
4.전쟁 중의 제국 1937~1945

본문내용

일본제국 가운데서도 공폭이 없던 樺太는 여전히 후방지대에 있어서 일본의 권위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주민들도 대부분 종전까지 평정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이 되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소련이 돌연 선전포고한 북방에서 공격해 오는 데에 이르자 제국 가운데 평온한 지역은 사라지게 되었다. 樺太는 소련군에게 수륙양면으로 공격받아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40만 명의 일본인은 약4만 명의 조선인을 남겨둔 채 홋카이도로 전후 송환되었지만 남은 조선인의 문제는 또 하나의 미해결 전후처리문제가 되었다.
소련의 기갑사단은 만주에서 조선, 관동주에도 진격해, 일본인은 군민과 함께 도망할 길을 찾아 갈팡질팡하였다. 소련군이 조선에의 진격을 중지한 것은, 미군이 반도 남부에 상륙해 북위 38도선을 사이로 양군이 점령지역을 잠정적으로 나누는 것에 합의했던 때였다. 조선주재의 일본 민간인은 이미 당국의 보호가 없어졌기 때문에 조선인의 증오에 노출되어 있었다. 군중에게 두드려 맞는 일이 있거나 상점이나 주거가 火攻을 당하거나 강탈당하고, 일본의 신사는 격앙되어 해방으로 들끓는 조선의 군중에 의해 분분히 파괴되었다.
대만에 있어서 일본통치의 종언은 조선보다도 훨씬 평온했고 무사히 행해졌다. 항복 후에도 대만 총독부는 시정권을 국민당군에 넘기기까지 수 주 간에 걸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이관사무를 보는 계속할 수 있었다. 1945년 10월 중순이 되자, 처음 국민당군이 도착해 시정권의 인수를 받아 대만이 이후 중화민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됨을 선언하였다. 시정권반환식은 극히 공식적인 형태로 행해져, 권력의 위양에 어떤 혼란도 봉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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