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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의 역사]프랑스 혁명사(퓌레, 리세 저)를 읽고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6.08.1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프랑스 혁명사(퓌레, 리세 저)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목차

제1장 루이 16세 시대의 프랑스
제2장 신분들의 반란
제3장 89년 여름의 세 혁명
제4장 행복한 해
제5장 혁명의 일탈
제6장 혁명의 낭만주의
제7장 비탄의 시간
마치며

본문내용

마치며
퓌레와 리세는 프랑스의 역사가로서 수정주의를 주장한 사람이다. 프랑스에서는 70년부터 수정주의의 학설이 제시되었다. 이 책은 자신들의 감정을 쓴 책이다. 퓌레는 수정주의자들의 교황의 역할을 하면서 전통론에 대한 모든 공격을 감행했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혁신적인 주장을 많이 내 놓았고 혁명에 대한 관점을 많이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혁명에 대해 혁신적, 도전적인 해석을 내 놓았고 정통파와 수정파 사이의 본격적인 논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알베르트 소볼과의 논쟁이 있었다. 퓌레는 프랑스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과거와의 연속성상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통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현대사로 넘어가는 급격한 단절이자 관문이고 봉건제가 타도되고 자본제가 나타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퓌레가 볼 때 엄청난 사회구성체의 격변이 아니라 이미 그때 당시에 프랑스의 정치체제는 개혁이 되고 있었다. 개혁이 되고 경제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뿐이다.
엘리트혁명론이 퓌레의 대표적 관점인데 18세기를 통하여 자유주의적인 귀족과 부유한 상층 부르조아지로 구성된 새로운 엘리트층이 형성되었다. 전통론에서는 부르조아와 민중은 동맹을 맺어 같은 범주에 속하고 귀족을 타도하고 자본주의를 열기위해서 부르조아가 계급투쟁을 통해 귀족을 물리친다. 즉 전혀 화합할 수 없고 선이 그어진다. 귀족 대 브로조아지의 선이. 하지만 퓌레의 입장에서는 18세기이후 백여년이 흘러오면서 귀족 중에서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귀족들과 부르조아지 중에서 상층 부르조아지들이 경제상의 이해관계를 갖고 문화적인 동질성을 확보하면서 사회의 엘리트층을 형성했다. 귀족과 부르조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계급적인 장벽이 없었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그 매개가 되는 것은 계몽주의 사상이었다. 즉 절대왕정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성과 합리주의의 추구하는 계몽주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상층 부르조아 뿐만이 아니라 계몽주의를 받아들인 귀족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몽테스키외를 들 수 있다. 단지 이들 개방된 엘리트들은 사회구성체를 변혁하고 했던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자유를 열망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 혁명은 부르조아혁명보다는 계몽주의 혁명에 가깝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전통론 해석에서는 농민혁명과 상뀔로뜨 혁명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부르조아 혁명과 맞물려서 같이 나아간다고 하였다. 즉 전체집합이 부르조아 혁명이다. 하지만 수정주의에서는 농민은 농민대로, 상뀔로뜨는 상뀔로뜨대로, 부르조아는 부르조아대로 별개의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각각 폭동을 일으켰을 뿐이지 전혀 이해관계를 같이 한 것이 없다. 즉, 세 가지 혁명의 상충을 이야기 한다.
혁명 10년을 보는 관점도 많이 다르다. 혁명은 원래는 본궤도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탈선해버린다. 처음에는 행복한 한해였다. 89년-90년 초기의 온건한 단계 즉 부르조아 혁명단계에서는 봉건제 폐지선언, 인권선언,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입회주의 등이 선언되었고 이 시기는 혁명초기 온건한 시기로서 행복한 한해라고 할 정도로 아주 건실하고 좋은 개혁이 일어난 바람직한 시기였다. 하지만 92년 8월 공화제로 바뀌고 결정적으로 상뀔로뜨들이 혁명에 개입하여 혁명이 과격해지고 괘도에서 탈선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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