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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무신집권기 농민항쟁과 고려 후기 사회변동

저작시기 2006.03 |등록일 2006.08.08 한글파일한글 (hwp) | 2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 사회가 갖고 있던 기존의 모순구조에 대한 위로부터의 대응이 무신정변이었다고 하면, 무신집권기의 농민항쟁은 아래로부터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이 기존의 모순구조 속에서 파생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이것은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며 고려사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 전기 사회의 모순구조와 고려 후기의 사회변동에 대해 고찰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규명해야 할 부분이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이다.
이 글에서는 무신집권기 농민항쟁과 고려 후기 사회변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무신집권기에 발생한 농민항쟁에 초점을 두어 농민항쟁을 파생시킨 고려 전기 사회의 모순구조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무신집권기 농민항쟁 특히, 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최씨집권기의 농민항쟁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성격을 띄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이 이끌어낸 고려 후기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사회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의 원인
1. 정치적 원인 - 12세기에 나타난 대민책을 중심으로
2. 경제적 원인
3. 사회적 원인
Ⅲ.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의 전개 - 최씨정권기를 중심으로
1. 천민들의 항쟁
2. 경상도 지역의 신라부흥운동
3. 강화도정부 시절의 농민항쟁
Ⅳ. 고려 후기 사회변동과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1. 고려 후기의 사회변동 - 사회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2.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Ⅴ. 맺음말

본문내용

이렇게 고려 후기로 갈수록 토지소유의 불균이 확대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권력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즉, 고려 전기까지는 관료체제가 국왕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으나, 12세기 이후 정치운영을 특정 세력이 주도하면서 세력 유지를 위해 농장을 운영하였다. 12세기 초의 인주이씨 일족이나, 무신정권기 집권자들 특히 최씨정권, 그리고 원 간섭기의 부원세력이 바로 대토지소유의 주체가 되었다. 관료체제의 불균형이 농장 발달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농민항쟁과 몽고와의 전쟁으로 늘어난 陳田의 문제가 있다. 진전을 개간하여 형성된 농장은 소유지집적형 농장이라 비법적 수조권에 근거한 농장과는 구별이 된다. 그러나 賜牌의 불법적 사용을 통한 토지탈점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진전의 발생 또한 불법적 대토지경영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탈점에 의해 형성된 농장은 전주권의 불법적인 확대에 기초한 것이므로, 수조지에서의 수취강화와 수조지의 양적 확대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둘은 별개로 진행된 것이 아니고 함께 이뤄졌다. 즉,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수취의 강도도 강해진 것이다. 수취강도의 강화는 수조권과 소유권의 균형을 파괴하고 수조권에 의한 소유권 침해를 가져왔다. 농민의 소유권은 피탈되고, 토지는 농장주의 소유지가 되어갔다. 수조권의 강화와 그로 인한 소유권 침해는 결국 수조권 자체의 소멸과 소유권에 입각한 토지지배관계의 성립을 촉진하였다. 중세사회의 토지소유구조가 가진 특성이자 한계였던 수조권은 농장의 발달단계에서 그 존립의 한계를 드러냈다.
속현과 부곡지역은 고려 후기 이래 주민의 이탈이 심해 군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군현 개편은 속현과 부곡지역을 주현에 내속시키거나 주현의 직할촌으로 편입시키고, 혹은 몇 개 속현과 부곡지역을 합쳐 군현으로 승격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군현제와 부곡제의 복합적이고 계서적인 고려 특유의 군현체제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즉, 500여 개의 군현과 900여 개의 부곡제지역이 조선 초기 330여 개의 군현으로 축소되어 개별 군현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배가 가능한 군현 지배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군현 개편은 조선 태종, 세종 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므로 고려 후기의 군현 개편은 조선적인 군현 개편으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으며, 고려에서 조선왕조로 왕조교체가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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