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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병전쟁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8.0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근대시기 의병전쟁의 변화양상과 활동내용 그리고 시기에 따른 성격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Ⅰ. 전기의병 투쟁
Ⅱ. 의병의 재봉기
Ⅲ. 해산병의 참전과 후기 의병전쟁
Ⅳ. 독립군으로의 전환
Ⅴ. 의병전쟁의 결산과 의의

본문내용

Ⅰ. 전기의병 투쟁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이 있자 척사유생을 비롯한 조선인들은 이를 민족존망의 위기상태로 받아들였다. 이어서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의 사주를 받는 친일적 개화정권의 개혁정책을 일본으로의 예속정책으로 인식한 조선인들이 무력투쟁을 감행한 것이다.
서상철은 갑오변란으로 경복궁이 유린당하고 고종이 핍박당함에 분기하여 격문을 발표하고 1894년 7월 안동향교에서 거의하였다. 이 기병은 안동부에 의해 저지당했으나 서상철은 계속 의병을 초모하여 상주의 태봉에 있던 일본군 병참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상원의병은 관료출신인 김원교 등이 상원관아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원교는 반개화․반침략의 이념으로 의병을 봉기하였다.
1895년 8월 20일 발생한 을미사변 직후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한 한일의병은 9월 18일 무과출신 문원봉에 의하여 유성에서 시작되었다. 의병은 600여 명에 달하였으며 회덕현을 급습하여 무기를 탈취하여 공주부 관아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또 1895년 11월 김이언이 만주의 삼도구에 거점을 두고 초신군 아전 출신 김봉현과 동학접주였던 김창수와 함께 압록강 양안의 포수 300여 명을 모병하여 의진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국모의 시해에 항거하는 격문을 발표하고 압록강을 건너 강계읍으로 진격하였다.
1895년 11월 15일 단발령 공포 후 전기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서울에 있던 김하락은 구연영․신용희․김태원․조성학 등 젊은 유생들과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가 포군을 포섭하여 이천의병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민승천의 안성의병과도 연합하여 1896년 1월 17일 이천의 백현에서 일본군과의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광주군수를 처단한 광주의병과, 심상희가 조직한 여주의병이 합세해 와 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확보하고 서울 진공계획을 수립하는등 전과를 올렸다.
춘천의병은 1896년 1월 춘천유생 정인회가 군인 성익환과 상인 박현성을 포섭하고 포군 400여 명과 춘천관찰부를 점령하였다. 여주출신의 민용호는 1월 30일 평창․영월․정선지방의 포수로 의진을 구성하여 강릉부 관할 9군을 총괄한 관동의병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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