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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당태종의 치적

저작시기 2006.08 |등록일 2006.08.04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당태종의 치적에
대해 상세히 언급되어 잇으니 잘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서론

2. 당나라 이전의 사회모습

3. 당태종의 치적

1) 중앙집권제 실시
2) 학문을 장려함
3) 과거제도 실시
4) 뛰어난 인재등용
5) 불교진흥정책

4. 정관정요-정관의 치세(貞觀之治)

5. 선덕여왕과 당태종

9. 결론

6. 당태종의 고구려 정복실패

5. 선덕여왕과 당태종 관계

본문내용

1. 서론

당태종은 중국사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사적으로 손꼽을 만한 대정치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서양사의 암흑시대였던 서기 600년에 중국대륙에서 한 이래 500여 년에 걸친 혼란을 수습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당나라가 번성했을 때는 중국의 고유의 문화를 꽃 피웠을 뿐 아니라 웅대한 세계적 대 제국으로서 널리 외래문화를 섭취, 동화시켜 국제적인 종합문화를 형성했다. 그래서 동양제국의 문화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찬란한 신라문화에 영향이 심대하며 일본 문화의 개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장에서는 당태종의 치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신라와 고구려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2. 당나라 이전의 사회모습

그 이전 중국은 선비족의 북조(北朝)와 한족의 남조(南朝)로 272년 동안 갈라져 싸우다가 590년 수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러나 수는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제2대 황제인 양제(煬帝) 때 크게 어지러워졌다. 양제의 무리한 운하 건설과 고구려 원정, 그리고 계속되는 폭정으로 민생이 파탄 나고 내란의 양상이 짙어지자, 세민은 수나라 타도의 뜻을 품고 618년 태원(太原) 방면 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를 설득하여 거병, 장안을 점령하고 당나라를 수립하였다. 수나라가 붕괴되자 각 지방의 유력한 무장(武將)들이 저마다 독립하여 천하를 장악하려고 서로 싸웠다. 남부지방은 이전의 남조를 계승한다는 취지하에 독립했다. 만리장성 밖의 유목민족 중 가장 강성했던 돌궐족은 중국으로 쳐들어와 변경에 괴뢰왕조를 세워놓고 본격적인 대규모 침공을 노리고 있었다.

그 뒤 6년간(618~624) 세민은 돌궐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몰아내고 남부 지방을 정복했으며 다른 모든 경쟁세력을 물리쳐 국내 통일을 이루었다. 당나라에 대항하여 싸웠던 많은 반란 지도자들은 패배하여 처형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당나라의 작위를 받았다.

당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둘째아들이다. 이연이 진양에서 거병하여 관중을 함락시키고 군웅(群雄)을 제압하면서 전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이세민의 공적은 매우 두드려졌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서연달·오호곤·조극요(중국사연구회 역),《중국통사》, 청년사, 1989.
미야자키 이치사다(임중혁·박선희 공역),《중국중세사》, 신서원, 1996.
오긍(김원중 번역),《정관정요》, 홍익출판사, 1998.
이춘식,《중국사서설》, 교보문고,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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