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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운영전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31 | 최종수정일 2018.06.14 한글파일한글 (hwp) | 32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고전소설 운영전입니다

본문내용

수성궁(壽成宮)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옛 집으로, 서울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있다. 이곳은 산천이 수려하며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남쪽에 사직(社稷)이 있고 동쪽에는 경복궁(景福宮)이 있다. 인왕산의 한 줄기가 굽이굽이 휘돌아내려오다 수성궁 앞에 이르러 우뚝 일어선다. 비록 높고 험준하지는 않으나 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큰 길에 늘어선 시장이며 성 가득 으리번쩍한 집들이 바둑판의 바둑돌 모양 하늘의 별들 모양 펼쳐져 있어 역력히 가리킬 수 있고 베틀에다 실을 가로세로로 짜 놓은 것처럼 구획이 뚜렷하였다. 동쪽으로는 아득히 궁궐이 바라보여 두 갈래 길이 하늘을 가로지르고(複道橫空) 구름 안개가 쌓여 내는 비취빛이 아침저녁으로 자태를 드러내니 참으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할 만하다. 당대의 술꾼이며 활쏘기 즐기는 이들, 노래하고 피리부는 아이들, 시인이며 서화가들이 꽃피는 봄날이건 단풍지는 가을날이건 날마다 여기서 노닐어 자연을 노래하며 즐기다가 집에 돌아갈 것도 잊는다.
청파(靑坡)에 사는 선비 유영(柳泳)이 이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싫도록 듣고는 한 번 여기서 노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옷이 남루하고 얼굴빛도 꾀죄죄하여 놀러온 길손들에게 비웃음당할 것이 뻔하기에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다가도 머뭇머뭇한 지 오래였다.
만력(萬曆) 신축년(1601) 3월 16일, 유영이 탁주 한 병을 사서는 아이종도 친구도 하나 없이 혼자 술병을 차고 궁궐 문을 들어서니 보는 사람마다 모두 돌아보며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다. 유영은 창피하고 무안하여 후원(後園)으로 들어갔다.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서울의 궁궐이며 성 가득 화려한 집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무너진 담장, 깨진 기와, 못 쓰게 된 우물, 무너진 계단에 초목이 무성하고 오직 동쪽에 곁채 몇 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유영은 서쪽 정원에 샘과 바위가 그윽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온갖 풀들이 빽빽이 자라 그 그림자가 맑은 연못에 떨어져 있고 땅 가득 떨어진 꽃잎에는 사람 지나간 흔적이 없는데, 산들바람이 불자 향기가 가득 퍼졌다. 유영이 홀로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蘇東坡)의 시 한 구절을 읊조렸다.
반쯤 지나간 봄날 조원각(朝元閣)에 오르니 我上朝元春半老,
마당 가득 떨어진 꽃잎 아무도 쓸지 않았네. 滿地落花無人掃.
그러더니 차고 온 술병을 풀어 술을 모두 마시고는 취하여 바위 한 켠에 눕고 돌로 머리를 받쳤다.
얼마 뒤 술이 깨어 눈을 들어 보니 놀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없었다. 산은 달을 토하고 안개는 버들잎을 감싸고 바람은 꽃잎을 살랑였다. 그때 한 줄기 가녀린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유영이 이상하게 여기고 일어나 보니 소년 한 사람이 젊은 미인과 정답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소년은 유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일어서서 맞이했다. 유영이 인사하고 물었다.
“수재(秀才)는 어떤 분이시기에 낮에 놀지 않으시고 밤을 택하여 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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