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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B

[동양문화사]명의 건국 / 사회 / 정치 / 문화

저작시기 2005.11 |등록일 2006.07.27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명의 건국과정과 사회 정치 문화에 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목차

1. 명의 건국과 발전
(1) 명 태조의 통치와 황제전제권의 확립
(2) 성조 영락제의 치적과 해외발전

2. 내각제의 발전과 신사층의 대응

3. 명대사회의 경제
(1) 명대 사회 생산력의 발달
(2) 상업 자본주의 맹아론

4. 명 중기 이후 사회모순의 격화와 농민봉기
(1) 명 중기 이후 사회모순의 격화
(2) 이자성의 반란과 명조의 멸망

5. 명대 문화와 학술사상
(1) 명대 문화의 특징
(2) 양명학의 성립과 발전

본문내용

(1)명 태조의 통치와 황제전제권의 확립
주원장은 백련교의 난에 호응한 곽자흥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운 다음 남경을 중심으로 한인 지식인계층을 흡수하면서 유교적인 왕조의 회복을 제창했다, 그는 유교에 기초한 여섯 가지 가르침을 반포해 익히게 했고 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아 과거제도를 실시했으며, 대명율과 대명령을 반포했다.
농민의 생활 안정과 국력의 회복을 시도하였으며 영전사를 설치해 황하와 장강에 대한 규모 치수사업을 통해 황무지 개간에 주력했고 둔전을 경작, 토지측량과 인구조사를 실시해 토지대장인 어린도책과 각 호의 조세부담액을 기록한 부역황책을 작성했다. 부영황책은 10년마다 개편되었고, 행촌조직으로 이갑제를 시행했다. 이갑제 실시목적은 이장과 갑수를 통해 부역황책의 작성과 조세징수, 부역부과 및 이내의 권농과 교화, 재판 등을 자치적으로 처리하게 하는데 있었다. 한편 연좌법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원의 제도를 답습했던 행정기구를 개혁하였는데 중서성에 설치된 평장정사와 참지정사를 폐지, 통정사사를 설치해 직접 황제에게 전달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황제권을 강화했다. 원대에 민정과 군정을 총괄한 지방 최고행정기구였던 행중서성을 폐지하고 행정을 담당하는 포정사사와 군정을 담당하는 도지휘사, 감찰을 담당하는 안찰사를 분리 설치해 황제에게 직속시켜 중앙집권적 황제지배체제의 강화를 이루고 한 것이었다.
홍무 7년에 발생한 문자의 옥으로 4걸이 숙청되었다. 또한 홍무 13년 재상이었던 호유용의 난으로 처형된 사람이 3만 명에 달했다. 이를 계기로 재상직이 없어지고 6부가 황제에게 지속되어 정무를 장악하는 체제로 황제권을 절대화 하고자 했다.
주원장은 언관의 지위를 높여 관리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어사대 대신 도찰원을 설치해 조정의 관리들을 탄핵, 지방에는 순안어사를 파견 지방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을 담당하도록 했다. 태조는 정보정치의 강화를 목적으로 금의위를 두어 특무기관으로 활용하였는데 사소한 잘못으로도 조종에서 매를 맞는 정장에 처해져서 황제 앞에 무력하게 되었다. 또한 태조는 환관의 문자습득 기회를 박탈해 환관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했다.
한편, 군사제도의 개편을 단행해 상호견제를 통해 군사권을 황제에게 집중시켰다. 병사들은 세습되어 병적에 등재되고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아 평상시에는 둔전을 경작하고 유사시에 출정했다. 전쟁이 끝나면 각기 위소로 돌아가고 장수들은 병부를 반납해 병사를 전횡하는 일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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