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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학 연구사 정리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7.2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집강소와 동학농민운동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연구사를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대부분 각주를 달아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목차

1.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에 관한 연구
(1) 집강소에 대한 설명
(2) 집강소에 대한 연구의 역사
2. 동학농민운동의 혁명적 성격 검토 관계 연구

본문내용

(1) 執綱所에 대한 설명(일련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東學 農民運動의 전개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執綱所의 발전단계는 크게 5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愼龍廈, 『東學과 甲午農民戰爭硏究』, 一潮閣, 1993, pp.188~192

愼龍廈의 연구에 따르면, 제 1기는 1894년 3월 20일 茂長에서 봉기하여 고부를 점령한 때부터 5월 7일 동학 농민군과 관군 사이에 전주화약이 체결된 시기까지이다. 제 2기는 5월 8일부터 6월 초순까지로, 전라관찰사 金鶴鎭과 全琫準 사이에 全州和約이 체결된 결과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내어주고 자진 해산하는 형식으로, 출신 郡으로 돌아가서 執綱所를 설치한 단계이다. 제 3기는 6월 중순부터 말까지로, 동학농민군과 양반관료․부호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격화되자 관찰사가 郡執綱을 합법화하여 도내 행정의 질서를 수립하는데 동학농민군의 협력을 얻으려고 했던 단계이다. 제 4기는 7월부터 재봉기한 9월 12일까지로, 집강소가 전라도 53개 군․현의 통치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폐정개혁을 위한 통치를 실시하던 시기이다. 제 5기는 9월 13일부터 12월 말까지로, 동학농민군이 2차 봉기하여 日本軍․官軍․兩班儒生軍과 혈전을 벌이던 단계이다.
동학 농민운동의 정황을 살피면, 봉건적 양반관료들의 농민에 대한 수취가 얼마나 가열했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韓㳓劤, 『東學亂起因에 關한 硏究』,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71
농민군은 전쟁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봉건적 지배층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결국 받아들여지는데, 동학 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사항은 주로 탐관오리 숙청과 경제적 가렴주구의 완화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연구는 운동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을 그 연구 속으로 끌어들이게끔 하였다. 그들에 대해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두 가지 입장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정리할 수 있다. 사건의 혁명성 여부를 기준으로 먼저 동학농민운동의 혁명성을 부인하는 견해와 인정하는 견해로. 전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형태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당시의 운동은 무장을 하고 군대의 편제를 만들어 전투를 하면서 운동을 전개했으므로 농민전쟁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평가한다. 이 측면에서 동학농민운동을 甲午農民戰爭, 東學農民戰爭, 東學亂, 東學農民蜂起 등의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이 견해는 당시 운동의 주체세력인 농민들의 정치의식의 저수준과 정치적 미성숙 때문에, 그리고 역사적 사회적 성격에서도 ‘革命’, ‘革命運動’이라고 볼 수는 없고 ‘農民蜂起’나 큰 규모의 봉기인 ‘農民戰爭’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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