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조선시대사]변방출신 장수 이성계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2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사특강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조선 건국과 이성계
2. 여진족 무사들의 존경을 받는 장수
3. 정치적 성장을 위하여
4. 위화도 회군의 진실
5. 권력과 행복의 함수 관계

본문내용

1. 조선 건국과 이성계
이성계(李成桂1335~1408년)가 조선왕조의 첫 임금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성계가 어느 정도의 구실을 했는지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정도전은 얼마나 원대한 구상 아래 조선 건국을 추진하고 새 왕조의 틀을 짰으며, 뒤에 태종이 된 이방원은 왜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 했는가 따위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아온 것에 비해, 이성계의 경우는 다만 조선의 태조라는 사실이 강조되었을 뿐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쥔 뒤 그가 조선 건국 과정에서 한 일은 무엇인지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를 못했고, 그가 왜 조선의 태조가 되었을까, 무슨 까닭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성계라는 함경도 변방 출신 장수가 새 왕조의 첫 임금이 되었을 까? 에 대해서조차 눈길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조선 건국은 분명 이성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성계가 있었기에 조선 건국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성계가 조선 건국 과정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겸손한 이성계
사료로 말미암아 이성계는 대단히 겸손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성계가 왕이 된 뒤에도 이색(李穡)을 형님 모시듯이 대하였다는 것이나, 한여름 더운 날 점심 무렵에 몰려든 신료들이 즉위하시라고 간청하는 것을 자신은 덕이 부족하다며 굳이 사양하다가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즉위하겠다고 수락하였다는 것, 즉위 의례를 거행하는데 차마 어좌에 나아가 앉지 못하고 기둥 안에 서서 하례를 받았다는 것 따위가 모두 그의 겸손을 알리는 일화들로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에게 겸양의 미덕이 없지는 않았을 터이나, 이와 같은 기록에서의 겸양하는 자세는 의도된 듯한 인상이 강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까지의 자신만만한 청년 장교 또는 무예가 뛰어난 장수의 모습이 새 왕조를 세울 무렵부터 문든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겸양하는 미덕을 갖춘 정치가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상은 겸손한 인물로서의 이성계에 대한 이미지 조작이 이루어진 결과가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 보니,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기록으로 보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이성계가 주도하는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참고 자료

이익주, 「권문세족과 사대부」, 『한국역사입문』2, 풀빛, 1995
이익주,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역사와 현실』, 역사비평사, 1995
이익주, 「고려말 신흥유신의 성장과 조선 건국」, 역사와 현실(특집 - 여말선초 정치세력과 정치운영론), 2002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