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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30년 전쟁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23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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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술과 연구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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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6세기와 17세기의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종교분열과 종교전쟁의 시기였다.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에 의해 정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새롭게 깨어난 비판의식은 교회의 폐해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세속화된 교회에 대한 불만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폭발되었다. 종교개혁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인 카알 5세 였는데 그의 목표는 제국의 통일과 교회의 통일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므로 루터 및 루터를 지지하는 독일의 제후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평화조약으로 지방제후들은 종교를 그들의 예속 아래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으며, 개신교는 구교와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독일은 종교적으로 양분되었다. `지배자의 신앙이 지배지의 신앙이다`라는 원칙에 의해 각 지역의 주민들은 그들 군주의 종교에 따라 구교와 신교 둘 중 하나를 믿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북부 및 중부독일은 대부분이 신교 지역이고 남부는 주로 구교이다. 그러나 이 조약으로 정치적 종교적 분쟁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카톨릭 측에서 반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카톨릭을 지지하는 남부독일의 제후국인 바이에른의 대공들이 반종교개혁을 수행하였다. 1555년 조약 당시 독일은 전체 5분의 4가 개신교였으나 반종교개혁으로 많은 제후국들이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섰다. 독일에서 카톨릭 세력이 확대될수록 신교와 구교간의 긴장이 더 커졌다. 보헤미아에서도 반종교개혁을 수행하려는 합스부르크가의 무력적인 시도에 신교파도 무력으로 대응함으로써 30년 전쟁(1618-1648)이 일어났다. 이는 전유럽의 대결로 확산되어 종교적인 대립과 정치적 대립이 충돌하였다. 30년 전쟁은 종교분열에 해답을 제공하지도 못한채 독일에 정치적 경제적인 큰 손상을 입혔다. 이 전쟁으로 독일의 대부분 지역이 황폐화되었고 인구가 격감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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