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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낙태의 찬반 논쟁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21 한글파일한글 (hwp) | 25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낙태의 예방과 대안에 관한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저의 자료를 통해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낙태의 찬반 논쟁

1. 서론
2. 낙태의 원인
(1) 혼전성교 · 미혼모의 증가
(2) 남아 선호 사상
(3) 임산부의 건강 및 자율권
3. 우리나라의 낙태 현황
(1) 우리나라의 낙태 수술 건수
(2) 한국의 낙태문화
(3) 태아상태 규정
4. 영아살해와 낙태방법

(1) 영아살해
(2) 낙태의 방법
1) 월경 추출 임신 중절법
2) 진공 흡출에 의한 제거법
3) 확장과 절단에 의한 제거수술
4) 프로스타그란딘 낙태법
5) 소금물 주입법
5. 낙태 찬반을 둘러싼 논쟁
(1) 태아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수 있는가?
(2) 생명 우선론과 태아의 인성 문제
1) 유전학파
2) 사회결과학파
3) 발달학파
(3) 선택 우선론과 여성의 자율 문제
(4) 낙태찬반여론
1) 생명논쟁의 다른 쟁점은 사형제도이다.
2) 미주 금지, 유럽.중동 허용 우세, 아시아는 혼재
6. 형법에서의 낙태죄
7. 현대 사회에서의 낙태 문제와 도덕성과의 문제
(1) 낙태 문제와 도덕적인 무지
1) 낙태와 이에 따른 문제
2) 여성 권리 신장에 따른 낙태선택
3) 성 도덕의 무지와 낙태에 대한 도덕적인 무관심
① 보수주의
② 자유주의
8. 낙태의 예방
(1) 다양한 피임방법
(2) 미혼남녀 ·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3) 의료수가제도를 개선
(4) 남성의 책임 있는 행동
(5) 정부의 노력- 대한가족협회의 역할 정립
(6) 언론-TV의 역할
9. 낙태예방의 대안

(1) 생명중심의 성교육
(2) 입양 예약제
(3)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사회분위기 조성
(4) 모든 사람의 관심
(5) 직접 참여와 재정지원

본문내용

우리가 낙태(落胎)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배 속의 애를 지운다>라는 의미의 낙태에는 <인위적>, <인공적>이라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산(流産)과 낙태의 구별이 우리의 임신문화에서도 확연히 다르게 쓰이듯이, 영어의 ‘miscarriage’(유산)와 ‘abortion’(낙태)도 그 의미가 구별된다. 프랑스에서는 태아의 탄생이 불가항력으로 중지된 경우에도 ‘abortement spontaon’ 라고 쓰고, 인공적인 경우는 ‘abortement provoqu’ 라고 하나, 일반적으론 ‘abortement’ 이라는 단어를 낙태에 국한시켜 부정적 의미로 일반화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어에 ‘avortement’이란 단어가 들어와 정착된 것은 1190년으로 라틴어를 그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낙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Faiseuse d` anges(직역하면 천사를 만드는 사람이나, 실제의미는 낙태전문산파)라고 부른다. 자연유산 이외의 일체 낙태를 금했던 카톨릭 전성시대 프랑스에서는, 임신중절은 그 시술을 받는 자나 하는 자 모두에게 극형을 내렸었다. 프랑스대혁명(1789)전인 13-18세기에 걸친 약 5세기 간 국가권력과 법이 적용되는 동안에도 카톨릭교회는 낙태를 순진한 영혼으로부터 영원한 구원의 가능성을 빼앗는 살인죄로 간주하였다.
카톨릭 교회의 이러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권력자인 왕들은 그들 주변의 여성들의 낙태에 대해서는 몹시 관대하였다. 그 대표적 예를 우리는 앙리 4세(Henri IV)[프로테스탄트 왕구인 나바르 출신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프랑스왕이 되었으며 부르봉왕가의 창시자]의 사생활에서 볼 수 있다.
앙리 4세는 우리에게 신 · 구교를 화해시킨 낭트칙령(1598)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왕족이나 귀족들이 부부와 같은 정상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성관계의 결과로 여성(귀부인, 궁녀, 평민 구별 없이)이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태에 처했을 때 낙태를 대부분 왕권으로 묵인하는 관대한 정책을 폈다. 그는 낙태가 영아살해나 영아유기보다는 사회문제를 덜 유발시키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평민(농민, 도시인 등)에게는 통치 상, 종교상 칙령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란 서양의학이 본격화한 해방 후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전쟁(1950-53)을 겪은 후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에서 대중화과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참고 자료

니겔 캐머린·파멜라 심스, 『낙태: 위기에 처한 기독 의료윤리』
월키 부부, 『낙태』, (낙태반대연합, 1997).
쟝 루이 프랑드렝, 『성의 역사』, 편집부 역, 동문선, 1998.
한국누가회, "태아와 생명윤리", ( 제3차 학술세미나 자료집).
황필홍(1990),『산아제한과 낙태와 여성해방』, 종로서적 : 서울

http://news.naver.com/news
http://blog.naver.com/issac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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