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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英祖代 戊申亂의 성격 규명과 탕평책의 실시 문제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20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머리말

2. 박필현의 난에 대한 고찰
1). 관련인물
2). 무신란 전반에 걸친 박필현의 위치

3. 무신란의 성격

4. 무신란 전후의 상황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영조 4년(1728년) 발발했던 무신란(戊申亂)은 중앙 관직을 가진 인물들이 일으킨 난이 라기 보다는 각 지방의 여러 세력들이 왕의 교체를 주장하며 일으켰던 난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난이 실패했기 때문에 무신란의 실체는 지금까지도 확실하게 구명된 것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연구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무신란에 대한 기존의 연구경향을 살펴보면 4가지 접근 방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中央權力과 地方土豪들간의 세력 다툼으로 보는 견해이다. 두 번째는 失勢한 南人과 일부 少論들이 정권회복을 위해서 난을 일으켰다는 견해이다. 또한 세 번째는 당시의 사회변동과 관련지어 조선후기 사회발전의 일면으로 민중의식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무신란이 民亂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연구경향은 1980년대 이후에 民衆史觀이 발달하면서 조선후기 역사가 민중의 힘을 기반으로 그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전제에서 이뤄졌다고 보았기 때문에 형성되었다. 마지막은 인조반정 후 경상우도지방 사림의 동향을 분석하여 우도사림의 분열과 노론의 진출로 인한 동계 후손들의 세거지에서의 영향력 감소 후 세력회복의 시도로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기존 연구의 경우 주로 이인좌나 정희량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서 진행되어 오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무신란이 ‘이인좌의 난’으로 대체되어 언급되는 것도 이러한 연구 경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인좌나 정희량이 무신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박필현(朴弼顯)의 난에 주목하려고 한다. 사실 기존 연구에서 박필현을 비롯한 박필몽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었다. 기존 무신란 연구에서 박필현은 호남 지역에서의 반란을 맡은 지역적 주도자로 간단하게 언급이 되었거나, 박필현을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인 지위를 위협받게 된 이유익(李有翼)이나 심유현(沈有賢) 등과 같이 준소(峻小)로 묶어, 정권에서 배제된 남인들을 포섭하여 영조와 노론의 제거를 계획했다고 보는 정도이다. 물론 박필현에 대해 중요인물이라고 평가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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