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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서간도 지역의 독립 운동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6.07.2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서간도 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적어봤습니다.

목차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이상룡(李相龍, 1858(철종 9)-1932)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간도 지역의 독립활동
1919년 국내에서 3ㆍ1독립운동이 전개되자, 국외에 망명하고 있던 독립운동 지사들은 이에 호응하여 국외의 교포들을 지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주, 노령, 미주 등 한국인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독립운동은 전개되었다. 그러나 민족의 비분과 주권회복의 열망이 총집결된 평화적인 3ㆍ1운동이 일제의 가혹한 무력탄압으로 자절되어 버리자, 만주독립운동자는 한결같이 평화적인 만세운동이 민족의 희생만 더할 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여 보다 조직적이며 무력적 성격의 운동만이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절감하였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만주에 건너와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많은 지도자들은 무기와 병력을 보충하여 훈련하면서 독립전쟁의 태세를 강화하였다. 3ㆍ1운동 후 많은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오기 시작하자 만주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이들을 영합하여 독립군을 확대 편성하여 나갔다. 여기서는 서간도 지역의 독립군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로, 이 해 4월 봉천성유하현삼원보(奉天省柳河縣三源堡)에서 조직되었다. 1919년 3ㆍ1운동으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많은 동포가 만주로 이주하는 기회를 이용, 박장호(朴長浩)ㆍ조맹선(趙孟善)ㆍ백삼규(白三圭)ㆍ조병준(趙秉準)ㆍ전덕원(全德元)ㆍ박양섭(朴陽燮) 등 각 단체대표 560여 명이 모여 각기 분립된 단체를 해체하고 독립쟁취를 위한 단일기관으로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대한 독립단은 국내외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ㆍ지부를 설치하고, 만주지역에는 거류 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여 구관(區管)을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국내의 지단조직은 국내 총지단장에 홍제업(洪濟業), 평안북도 정우범(鄭禹範), 평안남도 안창일(安昌一), 경기도 한덕리(韓悳履), 용천군 이후관(李厚觀), 철산군 안병철(安秉哲), 영변군 신태익(申泰翼), 정주군 조석균(趙錫均), 태천군 백낙기(白樂基), 영유 이항로(李恒老), 가산 오봉희(吳鳳熙), 수안 최일호(催一浩) 등이었다. 만주지방 조직으로는 장백현 총지단장에 유일우, 집안현 유수림자(楡樹林子) 최남표(催南表), 집안현 외차구(外疎區) 홍승국(洪丞國) 등이었다. 이들은 3, 4명씩 결사대를 조직해 평안남북도의 조선총독부 예하 경찰을 습격하고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면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확대시켜갔다.

참고 자료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5』, 1973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1993
김윤환 외, 『독립운동총서 4, 독립군의 전투』, 민문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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