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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영화 빈집 과 올드보이의 비교감상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2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김기덕감독의 영화 빈집을 박찬욱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와
비교를 통해 작품세계를 살펴본 감상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시작된 영화의 첫 장면은 골프 스윙 소리와 망이 출렁이는 모습(영화는 더빙이 아니라 자막 처리돼 있는데, 사실 알다시피 <빈집>은 대사란 것 자체가 많지 않은 영화이다. 두 주인공에 국한하자면, 거의 ‘무성영화’이니까).

오늘 낮에 <씨네21>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김기덕과 <빈집>에 관한 모든 것”이란 제목하에 정성일의 영화평과 김기덕과의 대담을 읽었는데(정성일은 아마도 임권택 이후에 김기덕과 가장 많은 시간의 대담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김기덕이 이 영화의 영어제목으로 고른 것이 <3번 아이언(3-iron)>이었다고. 그건 아마도 ‘빈집’을 이해하지 못할 미국 관객들에겐 적합한 제목인 듯싶다(그들은 이라고 옮길까?). 하지만, 당연히 이 영화에 더 적합한 제목은 ‘빈집’이며 러시아어 제목도 ‘푸스또이 돔’(=빈집)이다. 더불어 알게 된 건 두 주인공의 이름인데, 선화(이승연)과 태석(재희?). 여주인공의 이름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와 동일한데, 김기덕의 설명에 따르면 이름이 없던 주인공을 스태프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길래 ‘선화’로 했다고(감독은 ‘善火’란 뜻도 된다고 덧붙였다). ‘태석’은 한 연출부원의 이름이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중요한 한국영화들, 그리고 내가 러시아에서 본 한국영화 3편, 즉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올드보이>, <빈집>은 모두 ‘2+1’, 즉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그 차이를 집약하고 있는 건 각 영화의 결말이다(결말이란 건 운동/혼돈이 제거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지시한다). <여자>에서는 세 사람이 각각 다 혼자가 된다(“우리는 저마다 다 혼자이다”). <올드보이>에서는 복수자인 유지태가 제거되고 오대수 부녀(연인)가 남는다(“가정을 이루는 건 두 사람이다”). <빈집>에서는 선화와 남편, 그리고 태석, 셋이 한집에 동거하면서 남는다(“가정을 이루는 건 세 사람이다”).

이러한 결말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상식적이면서 ‘영화적인’ 건 <올드보이>이다. 한 가정의 (질서를) 위협했던 ‘악’은 제거되고(물론 한 치의 혀를 대가로 지불한다), 가정은 보존된다(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인간 ‘관계’에 가장 회의적인 홍상수의 영화답게 <여자>는 모든 관계를 ‘미래’의 것으로 남겨놓는다. ‘현재’에 각자가 챙기는 몫은 자기 자신뿐이다. 따라서 <올드보이>가 관습적이라면(‘복수’야말로 가장 유구하면서도 관습적인 테마이다) <여자>는 모더니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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