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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고이즈미 정권기의 자민당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7.1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900원

소개글

고이즈미 정권기의 자민당의 변화 및 정책 기조

목차

1. 고이즈미 내각의 성립

2. 자민당과 일본 정치

3. 고이즈미 체제의 정책기조
1) 우정민영화
2) 야스쿠니 신사 참배
3) 헌법 개정
4) 행정개혁추진법

4. 고이즈미 정권의 성과

5. 고이즈미 정권의 한계점

본문내용

1955년 자민당의 창당이래, 일본정치는 사실상 자민당의 지배체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1993년 자민당의 분열로 인해 잠시동안 총리가 호소카와 모리히로-하타 쓰토무-무라야마 도미이치 등 비자민당 출신으로 바뀐 적이 있지만, 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부터 다시 자민당 총리 시대로 복귀했다.
이런 자민당 정권을 뒤에서 조종하고 지탱해온 세력이 바로 다나카 인맥이다. 다나카 인맥은 1972년 다나카 총리가 다나카파를 만든 이래 다케시타파-오부치파-하시모토파로 이름을 바꿔오며 자민당 정치, 즉 일본정치를 좌지우지해왔다. 그들은 자파의 총리후보가 있을 때는 자파 총리를 만들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다른 파벌 쪽에서 대리인 총리를 내세우는 수법으로 30여 년 간 한번도 정권의 중심에서 떠나 본 바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하시모토파와 정면 대결해 승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탄생은 일본정치에서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 고이즈미 후보가 출마했을 때 그가 하시모토파의 회장인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회의원 346명 가운데 101명을 거느리고 있는 대파벌을, 60명에 불과한 모리파의 회장인 고이즈미가 깬다는 것은 그 동안 자민당을 지배해온 수의 논리로 볼 때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숫자에서 불리함을 바람으로 제압하는 전략을 구사해 성공했다. 10여년 동안에 걸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와 경기불황으로, 현상타파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그는 우선 파벌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을 읽고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모리파에서 과감하게 ‘파벌 이탈’을 선언했다. 또 오랜 동안 불황을 겪고 있는 경제를 철저한 구조개혁을 통해 살려놓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런 전략이 일반당원을 상대로 실시된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이 돌풍이 국회의원들간의 숫자놀음에만 익숙한 ‘나카타쵸’의 중앙정치무대를 쓸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고이즈미의 등장은 다만 자민당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일본 정치 전반에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첫째는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의 위기를 기존의 ‘자민당식 정치’나 또는 파벌에 의존하는 정치지도자로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다.

참고 자료

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 2001.09.21. 오가타 구니히코
“일본판 네오콘”의 급부상 - 2005.11.14. 양준호
일본, 고이즈미 신정권 출범 - 2001.04. 이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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