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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차자 표기법의 한계와 훈민정음 창제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7.17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훈민정음 이전의 차자 표기법인 서기체 표기법, 이두 표기법, 향찰 표기법, 구결 표기법을 각각 등장배경과 표기체제와 한계를 예문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표기법들과 한계와 훈민정음 창제 배경을 연계하여 서술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머물며
⑴ 서기체 표기법
⑵ 이두 표기법
⑶ 향찰 표기법
⑷ 구결 표기법
⑸ 차자 표기법의 한계

3.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그림 문자에 대한 흔적을 한반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의 문자 생활은 한자의 수입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의 한자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고구려의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BC 1세기경에는 한자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AD 4세기경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한자가 더욱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문자 유물인 AD 5세기경의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와 경주 호우총(壺衧塚)의 청동합(靑銅盒) 명문(銘文) 등을 비롯하여, 최근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한자가 새겨진 AD 3세기경의 와당(瓦當)과 봉니(封泥) 등이 발굴됨에 따라 AD 3~5세기경에는 한자가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자는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이므로 우리의 조상들이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기에는 적잖은 곤란이 있었다. 우선 중국어는 고립어로서 문법형태소가 필요 없는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교착어로서 문법형태소인 조사나 어미가 발달한 언어이다. 어순도 중국어는 동사가 목적어 앞에 오는 SVO 언어인데, 한국어는 SOV 언어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실정에 맞게 한자의 소리(音)와 뜻(訓)을 빌어 기록하는 차자(借字) 표기법은 이러한 두 가지 점이 고려되어 발달하게 된다.
가장 앞선 시기의 차자 표기는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 명사에 국한되었다. 예컨대, 신라의 시조를 혁거세(赫巨世)라 하거나, 불거내(弗拒內)라고 한 것은 ‘밝은 누리’란 뜻의 음독 혹은 훈독의 차자 표기이다. 고유명사의 차자 표기는 중국에서 주변 국가나 외국인의 이름을 표기하던 가차(假借)의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한자 차용의 훈독(訓讀), 석독(釋讀) 표기와 표의적 기능을 버리고 또 음적 기능을 살린 음독(音讀) 표기가 대표적이다. 중국어와 우리말은 어순이 다르므로 중국어 어순에 따른 한자의 배열 순서를 우리말 어순으로 변형시킨 것이 ‘서기체(誓記體)’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소리값을 이용하여, 우리말의 문법 형태(조사·어미류)들을 표기할 수 있는 ‘이두(吏讀)’를 고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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