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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경제]조선후기 농업의 발달과 지주제의 변화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17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 후기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동요를 일으키는 시기였는데, 이러한 조선 후기 경제구조의 변화의 원인을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 론-

1. 社會 經濟的 變動의 背景 3. 農村社會의 分化와 廣作農의 대두
2. 農業生産力의 발달 1) 廣作의 出現과 展開
1) 水田農業의 생산력 2) 經營型 富農
① 移秧法의 보급 4. 地主制의 變動
② 새로운 品種의 보급 1) 農村社會의 變化와 土地의 商品化
③ 施肥法의 발달 2) 地主制의 變動
④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5. 地代의 變化
2) 旱田農業의 생산력
① 品種의 증가와 새로운 作物의 보급
②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③ 輪作의 실시
3) 水利施設의 확대
4) 農地開墾
-결 론-

본문내용

-서론-
朝鮮後期 즉, 17~18세기에 이르러 한국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중세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여러 부분들이 동요되면서 중세사회의 구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회적인 면에서 신분제의 動搖, 경제면에서 신분제와 맞물려 중세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었던 경제구조의 변화, 또한 사상면에서 유학자들의 주자학적 사유방식에 대한 이반, 정치적인 면에서 붕당정치의 전개 및 향촌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의 등장 등 사회경제사상정치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를 근원적으로 유발하면서 토지를 둘러싼 소유관계와 농민의 부담형태가 변하여갔고, 아울러 농촌사회도 재편되어갔다. 또한 농업이외의 상업수공업광업의 부문도 변하여가면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농민들이 국가에 대하여 지고 있던 부담형태인 田稅貢物身役의 賦稅체계도 변화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 부분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동요를 일으키는 시기였는데, 이러한 조선 후기 경제구조의 변화의 원인을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社會 經濟的 變動의 背景
이 시기 농업생산에 따른 이러한 제반 변동들이 전개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15세기 조선은 고려 말기에 격심하게 진행되던 수조권과 소유권의 갈등대립을 과전법이라는 토지 조세체계의 재조정을 통하여 일단 정리함으로써, 토지 소유관계에 있어서 집권적 봉건국가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전국의 토지는 개개인의 개별 소유지이자 사적 경영지인 민전의 기반 위에서 수조권을 통하여 파악되고 있었으니, 하나의 토지에 소유권과 수조권이 조화 대립되는 가운데 토지 수유관계가 봉건적인 中層構造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는 이 시기 농업체제의 본질을 구성하고 농업생산을 규제하는 것으로, 조선은 이를 통하여 통치권력을 구축하고 농민 지배를 강화하여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토지의 지배소유關係는 시대가 진전되어 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수정 개편되면서 해체되어갔다. 그리고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職田法의 실시와 그 붕괴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조권에 의한 토지지배는 소멸되었다. 이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신분 계급적인 토지분급제의 와해로서 그 배후에는 소유권의 성장과 안정, 나아가 농민층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신분적 계급관계와 토지의 소유 및 지배 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게 되었다. 직전제의 붕괴를 기점으로 하여, 이제 우리나라의 봉건적 토지 소유권으로서는 소유권만이 있게 되었고, 따라서 이에 기초한 토지 소유관계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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