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국근세사]조선전기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7.17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에 대해서는 誠으로써 사대외교를, 일본과 여진 등에 대하여는 信으로써 교린외교를 펴나간다는 것이 조선의 사대교린정책이었다. 지금부터 조선의 명, 여진, 일본 및 동남아시아와의 대외관계를 살펴보고 이러한 대외관계가 각각의 국가들과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이유로 그러한 정책을 펼쳤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목차

Ⅰ. 머리말
Ⅱ. 朝鮮前期의 對外關係
1. 明과의 關係
2. 女眞과의 關係
3. 日本과의 關係
4. 동남아시아와의 關係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시대인의 세계인식에서 대표적인 사고방식은 天圓地方觀과 中華主義的 世界觀이었다. 특히 조선의 개국과 함께 유교가 지배이념으로 채택되면서 후자의 세계관이 중심개념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事大交隣의 대외정책을 펼치게 되는 것이며, 중화주의적 華夷觀은 고대 중국인의 중화사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중국 중심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들의 문화적 우월의식에 입각하여 漢族이 살던 지역을 ‘內’, 주변민족이 살던 지역을 ‘外’, 그 종족 및 문화를 ‘夷’로 구분하였다. 처음 문화적 우월관념에서 출발해 종족적‧지리적 관념이 결합된 형태로 전개된 중화주의적 화이관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 있다. 조선은 중화주의적 화이관과 사대조공 체제에서는 ‘夷狄’으로 분류되지만, 유교문화 면에서는 중국과 대등하거나 버금간다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華’로 자처하였다. 스스로를 ‘小中華’라고 하여 중화인 명과 일체화시키는 한편 주변국가인 일본‧여진‧유구를 배제하여 ‘夷狄’으로 간주하였다.
중국에 대해서는 誠으로써 사대외교를, 일본과 여진 등에 대하여는 信으로써 교린외교를 펴나간다는 것이 조선의 사대교린정책이었다. 지금부터 조선의 명, 여진, 일본 및 동남아시아와의 대외관계를 살펴보고 이러한 대외관계가 각각의 국가들과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이유로 그러한 정책을 펼쳤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Ⅱ. 조선전기의 대외관계

1. 明과의 관계

조선 왕조는 중국대륙에서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하는 시기에 개창되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여말 선초의 변동과 국제 정세에 눈에 띌 만한 변화와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 시기 대외관계의 의미심장함을 엿볼 수 있다.
친명반원 정책을 주장하던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들은 명으로부터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인 면의 실리를 얻고자 조선 건국 이후에도 친명 사대외교를 계속 유지하였다.
이에 태조는 그의 정치적 위치를 확고히 하기위하여 명으로부터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승인해 줄 것과 朝鮮과 和寧 중 국호를 택일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왕조 개창에 대한 국제적인 확인과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였다. 그러나 명은 고려왕조의 역성은 승인하였지만 태조를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는 일은 보류했다. 따라서 조선과 명의 관계는 매우 긴장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태조가 물러남으로써 요동정벌에 대한 정책이 사그라지고 조선에 강경했던 명태조도 사망하여 명과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2-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국사편찬위원회, 1995
◈ 김돈, 『뿌리깊은한국사샘이깊은이야기4-조선전기』, 솔출판사, 2002

<참고논문>
◈ 하우봉,「조선전기 대외관계에 나타난 自我認識과 他者認識」, 전국역사학대회기조발문, 2003
다운로드 맨위로